9월 4일을 기해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초중고교가 새로운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백투스쿨(Back to school)이 시작된거죠.
학교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백투스쿨. 대학가는 5월 중순 방학을 맞았고 초중고도 6월 중하순에 방학을 했기 때문에 학교들은 적어도 두달반 이상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긴 방학으로 다소 생활이 흐트러진 아이들은 아침 일찍 등교를 하는 것이 버거울 것입니다.
학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목마다 주어지는 학습과제물과 수시로 보는 시험들, 그래서 백투스쿨을 앞두곤 학교가기가 싫다는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납니다. 그건 부모도 마찬가지죠. 싫다기 보다는 엄청 바빠질테니까요.
바야흐로 미국의 학부모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본래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학교앞 횡단보도마다 경찰 혹은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정리를 합니다. 학생이나 이분들이나 피차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지요. ^^
사커맘(혹은 미니밴맘)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는 전업주부를 일컫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훨씬 과외활동이 많고 자녀들을 학부모가 직접 데리고 다녀야하기 때문에 운전수 노릇하는 것만해도 큰 일입니다.
이 얘기들은 나중에 따로 전하기로 하구요. 오늘은 지난주 대학교에 입학한 나혜의 기숙사 입소 첫날 풍경을 소개해드릴까합니다.
기억하세요? 안나혜 양?
지난번 이 코너를 통해 나혜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소개했는데요. 이번엔 대학입학이니 그 속편격입니다. ^^
우리 가족과 나혜 가족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사이랍니다. 그래서 가족처럼 친하게 되었어요.
나혜는 뉴저지의 명문공립대 럿거스(Rutgers) 약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는데요. 지난 1일 기숙사에 들어갈 때 같이 따라갔답니다.
저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덕분에 새학기 풍경에 익숙하지만 대학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고 럿거스 캠퍼스는 처음이라 좋은 구경이 되었어요. 이날 신입생들은 오전 9시부터 1시사이에 기숙사에 입소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혜 가족이 살고 있는 뉴저지 포트리에서 럿거스는 남쪽으로 약 45분 거리에 있습니다. 럿거스는 캠퍼스가 여러 곳이 있는 아주 큰 학교인데요. 나혜가 다니는 약대는 부쉬(Busch) 캠퍼스였습니다.
9시반쯤 갔는데도 주차장은 거의 만원이었습니다. 차 댈 곳이 없어 고민하는 찰나, 운좋게 차 한 대가 빠져나가길래 야호~ 했습니다. ^^
기숙사건물들이 콘도처럼 참 보기좋지요? 큰 빌딩형의 기숙사도 있지만 이곳은 부지가 넓어서 단층으로 돼 있었습니다. 잔디밭 한켠에 등록 부스가 있어서 등록을 하고 기숙사 열쇠를 받았습니다.
기숙사 건물마다 짐을 내리느라 아주 혼잡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벗어났습니다. 럿거스 재학생들이 두명씩 짝을 이뤄 바퀴달린 대형카트로 주차장에서 기숙사까지 짐 운반을 도와주었습니다. 거의 이삿짐센터 수준으로 날렵하게 해주더라구요.
한학년동안 기숙사에서 먹고 공부하며 살아야 하니 다들 짐이 솔찮이 많습니다. 차에서 기숙사 방까지 풀방구리 방앗간 드나들듯 몇 번을 오가며 땀을 흘릴 줄 알았는데 학생들 덕분에 너무 쉽게 짐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가녀린 여학생들인데 말이죠.
학생들의 도움이 너무 고마워서 짐을 옮긴 다음에 몇 달러를 집어줬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웃으며 갑니다. 한국식으로 정을 주고받은 것 같아 참 좋네요.,^^
기숙사 입구를 들어서면 라운지 형태로 탁구대와 당구대 등 오락기구가 몇 개 있고 소파에서 쉴 수도 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복도 사이엔 세탁기와 작은 싱크대가 있었구요.
방은 대부분 2인1실이고 맨 끝방 두 개는 독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여학생들만 쓰는 건물이라는군요. 아들의 경우 기숙사 건물이 남녀학생들 방이 뒤섞여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 기숙사가 엄격하게 분리된 줄 알았거든요. 학교에 따라서는 남녀학생이 아예 한 방을 쓸수도 있다니 아직도 이런건 적응이 안되네요.
나혜는 잘 아는 한국학생과 룸메이트를 신청했구요. 방 앞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예쁘게 붙어 있었습니다.
방에는 작은 냉장고와 마이크로오븐이 있더군요. 한국학생끼리 있으니 김치냄새 걱정없이 간단한 취사도 편리할 것 같습니다. 침대와 책상, 옷장, 서랍장이 하나씩 주어지는데 서랍장을 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기숙사 방 크기에 맞아야 하는데 아마도 한꺼번에 주문한 것이라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방마다 옷장과 서랍장을 배치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아예 서랍장을 포기하고 침대 아래에 넣기도 했구요.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요? 침대를 책상에 바짝 붙이고 옷장과 서랍장을 마주보는 형태로 하니 절묘하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습니다. “약시 한국사람은 머리가 좋아”하고 뿌듯해하는데 옆방의 인도계 아빠가 우리 방을 지나다 가구 배치한걸 보더니 “아하, 이렇게 하면 되겠네!”하고 갑니다.
애플은 삼성과의 소송에서 아이폰의 둥근 모서리까지 디자인특허를 인정 받았는데 우린 가구 배치 특허를 받아야 하는거아냐? 하는 농담을 하며 웃었습니다.
가만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학생들도 제법 보이고 인도계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건너편 방 이름표엔 푸자(Pooja)라는 재미난 이름이 있더군요. 짐 정리가 거의 끝날 무렵 여기저기 기웃대는데 어라?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성희네 가족이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본 것이었는데요. 성희 역시 럿거스 약대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전액 장학금을 약속받았다니 부모님 등록금 걱정도 덜고 일찌감치 효도를 한 이쁜 딸이네요.
성희는 고등학교 친구인 인도계 학생과 룸메이트를 했답니다. 같은 건물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내게 됐으니 나혜와도 친하게 지내겠지요.
짐 정리가 끝나고 점심을 먹기위해 대학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큰 길을 건너니 마치 호텔을 방불케하는 커다란 로비와 푸드코트, 미니마트 등이 보였습니다. 학생식당은 뷔페식으로 아주 괜찮다고 하더군요.
간단히 점식식사를 마치고 나혜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처음 집을 떠나 생활하는 나혜의 홀로서기가 시작된게지요. 미국에서 대학생들은 예외없이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대부분 이렇게 혼자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진다고 합니다.
집하고 멀지는 않지만 엄마 아빠 품을 벗어나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이 나혜에게 인생의 좋은 공부도 될 것입니다.
함께 따라온 엄마도 언니도 막상 헤어지는 시간이 되자 포옹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힙니다. 저도 아들 처음 대학 기숙사에 내려놓고 오는데 왜그렇게 안쓰럽던지.. 눈물도 나고 콧등이 시큰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혜야. 약대는 공부하는 양이 상당히 많다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을 돌보며 즐거운 대학생활 하기 바란다.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