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든 미국이든 졸업식은 참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그것이 자녀들의 졸업식이라면 부모님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안겨줄 것입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중학교와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이주해 살다보니 미국학교의 졸업식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고르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인가요? 초등학교 과정(5년)을 마친 딸아이가 졸업하던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식장의 전면에, 한국으로치면 무대 단상에 아이들이 자리해 내려다보고 선생님들과 부모, 가족은 청중석에서 아이들을 올려다 보도록 했기때문입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날 식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교장선생님이었다는 것이죠.
한국같으면 단상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 장학사, 교육감 등 초청 VIP 인사들이 자리했겠지요. 청중석엔 학생들이 자리하고 그나마 앉으면 다행이고 기성세대들은 운동장에서 마치 열병훈련하듯 선채로 하지 않았습니까?
졸업식의 주인공이 바로 아이들인데 사실 그들을 단상으로 올려보내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는데 그런 모습이 익숙치 않던 초보 이민자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물론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런 배치가 가능한 이유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졸업식 내내 철저하게 아이들을 주인공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인상적인 교장선생님의 말중에 “여러분의 자녀들은 바로 2013년 클래스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2013년은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입니다. 부모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우와, 우리 아이가 앞으로 7년후엔 고등학교 졸업을 하네’ 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워집니다.
미국에선 고등학교 졸업식을 특별하게 평가합니다. 공립학교의 경우 마치 대학처럼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식을 거행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식은 엄격히 말해 졸업식이 아니라 진급식(Stepping-up Ceremony)입니다. 고등학교부터 제대로 된 의미의 졸업식을 부여하고 가운과 모자를 씌워주는 것이지요.
5월은 미국의 대학가 졸업시즌입니다. 물론 한국의 코스모스 졸업처럼 학기가 끝날 때마다 졸업식을 하지만 정규 졸업식은 5월에 일제히 열립니다. 큰아이가 이번에 대학졸업을 했습니다. 덕분에 대학의 졸업식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다시피 미국은 광활한 대륙이라 멀리서 오는 가족 친지들도 많습니다. 저는 집에서 승용차로 5시간 거리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래서 가까운 곳에 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전날 오게 됩니다. 호텔마타 졸업 특수를 누리게 되지요.
저같은 경우도 석달전에 호텔을 알아봤는데 어지간한 호텔들은 대부분 예약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또 졸업식 전날밤 단과대나 학과별로 학생과 가족들이 참여하는 축하파티도 열리기 때문에 보통 1박2일은 기본인 것 같습니다.
졸업식은 학교에 여유공간이 없으면 인근 시설을 빌려서 하기도 하는데 몇해전 NYU(뉴욕대)는 양키스 구장에서 졸업식이 열려 시선을 모았습니다.
아들 학교는 학교 체육시설에서 열렸는데 필드하우스라는 체육관이었습니다. 한꺼번에 수용할 수가 없어서 단과대별로 묶어서 오전 오후로 나뉘어 열렸습니다. 주차공간이 없어서 졸업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겨우 도착했는데 이미 체육관은 양쪽 관중석이 가족 친지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대학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졸업은 더욱 힘이 듭니다.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기 때문에 중도탈락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인사회의 경우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서 소위 명문대학에 많이 입학하지만 졸업을 못하거나 제때 못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학졸업식의 분위기는 한국과 사뭇 다른것 같습니다. 졸업에 대한 자부심과 기쁨이 아주 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녀 이름이 호명될때마다 마치 스포츠게임의 스타선수가 소개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부는 등 신명난 분위기였습니다.
졸업생들이 먼저 식장에 입장한 후 총장을 비롯한 교수진이 들어옵니다. 양쪽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기립하여 스승에 대한 예를 표하더군요.
관중석 한편에서 나이지리아 전통복장을 한 여성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설마하니 저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날아왔을리는 없을테고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이겠지요. 전통복장을 저렇게 갖추고 오는 자부심이 부러웠습니다.
이날 수석졸업으로 명예로운 졸업연설을 한 여학생입니다. 이 여학생은 페루에서 온 유학생이었는데 이날이 마침 어머니 생일이라고 언급하며 객석의 어머니를 가리켜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참 기쁘셨겠어요. ^^
학생들이 들고 있는 빨간 것은 졸업장입니다. 이 학교의 상징컬러가 바로 빨간색이구요. 마스코트도 빨간 깃털이 아름다운 홍관조(Cardinal)랍니다.
이 학교엔 한국학생들이 20 여명 정도 재학중인데요. 아들을 포함해 두사람의 졸업생이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과 중국 출신 학생들은 한국학생보다 너댓배로 훨씬 많았습니다. 특히 일본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일본의 대학과 활발한 학사교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날 졸업생들의 학사모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뭔가 글씨를 써넣고 장식을 한 학생들이 많았기때문입니다.
졸업년도인 2012를 쓴 학생들이 가장 많았고 학교와의 작별을 뜻하는 'Good Bye', 혹은 세계평화를 염원한다거나 부모님에게 감사한다는 내용들도 보였습니다.
목에는 졸업생을 위한 휘장을 감고 있었는데 이 역시 패션감각이 돋보였습니다. 아니, 그런데 돌연 일장기 패션이 등장합니다.
일본계 학생들은 대부분 일장기 마크를 넣은 모습이었는데요. 단체로 이렇게 맞췄다고 하더군요. 그런줄 알았더라면 아들에게도 태극마크를 넣으라고 했을텐데, 아무래도 아시아계 학생중에서도 소수계다보니 그런 정보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화사한 꽃장식을 학사모에 한 여학생들도 몇몇이 보이더군요. 빨간 꽃잎 역시 학교의 상징색을 나타내는 것이겠지요?
앗? 중년의 남자 교수님이 더우신지 시원하게 각선미를 뽐내고 계시네요. ^^
캠퍼스 경찰 아저씨가 뚫어지게 뭔가를 응시하고 있네요. 수상쩍은걸 보신건 아니겠지요?
이제 두시간반에 걸친 졸업식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졸업을 선언하면 졸업생들이 일제히 학사모를 공중에 던지는데 이날은 그 순서가 생략됐습니다. 지난해 졸업식때는 했다는데 왜 안했는지 모르지만 꼭 던지는게 관례는 아닌 모양입니다.
졸업생들이 퇴장하는 모습을 한 남성이 아이패드로 동영상을 담고 있네요.
교정은 화창했습니다. 삼삼오오 졸업생과 가족 친지들이 어울려 기념사진들을 찍습니다.

아들과 농구팀에서 함께 뛰었던 선배 졸업생이 와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체육관에서 눈에 띄었던 나이지리아 하객들이 한곳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졸업생보다 시선을 더 끈 이들이 서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노라니 주객이 전도된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졸업식이 끝나면 이제 캠퍼스는 석달이 넘는 긴 여름방학으로 고적한 풍경이 되겠지요.
세상의 모든 졸업생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