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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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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자욱한 수수빗자루..영화감독 김대실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1-03-15 (화) 13:17:14

황해도출생. 6.25전쟁때 남한으로 피난, 1962년 도미. 보스턴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수여, 최근 공무원에서 영화감독으로 전향.


1990년 김대실(Dai-Sil Kim-Gibson)이 만든 사할린의 동포들의 삶을 기록한 영화, ‘잊혀진 사람들(The Forgotten People)’이 상영된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적혀 있던 영화감독 김대실의 약력(略歷)이다.


그의 약력이 말해주듯 영화감독 김대실은 실향민(失鄕民)이며 제2의 고향인 미국에서 도날드 깁슨씨와 결혼했다. 내가 처음 만난 김대실은 무비 카메라를 들기 전에 그가 거쳐온 강단의 교수직이나 공무원의 흔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영화감독 김대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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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서는 잊을 수 없는, 잊혀져서도 안되는 영화, ‘잊혀진 사람들’을 만든 감독 김대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세월이 흐르며 깊어 간다. 같은 한국여자로서 미국 땅에서 영화인으로 함께 걷고 있다는 동지애가 바탕이기도 하거니와, 호주머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하며 살고 있는 바보들이기 때문이다.


두 바보 중 언제나 멋진 바보는 김대실이다. 내가 지쳐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는 슬그머니 새 영화를 만들어 나를 놀라게 한다. 나이 쉰 살에 처음으로 무비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는 김대실은 2007년 ‘모국(Motherland)’을 완성했다.


“내가 1938년생이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희(古稀) 잔치를 하자구 해요.” 1916년, 쿠바에 정착한 한인들의 인생유전을 중심으로 쿠바혁명이후 쿠바인으로 떠도는 한국인의 모습을 통해 “모국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 ‘모국’ 상영이후, 관객과의 만남에서 김대실이 던진 첫 마디였다.


“극대화된 과학의 발전으로 21세기는 그야말로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같아요. 지구촌시대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모국’의 실체에 대해 절실했는지도 모르지요. 그 애절한 ‘모국’을 만지고 싶었어요.”




엄마의 젖을 그리워하는 아기처럼 88년이래 김대실은 꾸준히 ‘어머니’를 찾고 있다. 종군위안부들의 비애를 그린 ‘침묵을 깨뜨리고(Silence Broken)’, 로스앤젤레스의 폭동을 담은 ‘4.29’와 ‘젖은 모래알(Wet Sand)’등 그의 영화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번득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면으로 물어 본 적이 없는 김대실의 내면적인 고독이 더욱 짙게 깔려 있다.


언젠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나는 한국에 가면 더 어색해!”하던 그의 음성이 내 귓전에서 서성거린다.

역사에 떠밀려 바람처럼 흐르며 살아 온 영화감독 김대실이 찾는 어머니, 그 존엄한 이름 모국을 나 역시 찾고 있기 때문일까.




“‘침묵을 깨고’를 만들 때, 위안부 할머니가 내 머리를 노려보다가 광주리같은 머리를 잘 빗고 다니라는 말에 배를 잡고 웃었어. 그 말이 어찌나 다정하던지....한국엄마한테만 나는 냄새잖아.”

김대실의 헤어스타일은 광주리라기보다는 먼지 자욱한 수수빗자루같다. 숨막히게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찬물 한 바가지를 뿌려놓고 싹싹 마당을 쓸어내는 수수빗자루처럼 사는 일에 주저해 본 적이 없는 한국여자, 영화감독 김대실.




이민자들의 나라, 이민자들의 천국이었던 미국이 이민자들을 뿌리치는 독선(獨善)에 치가 떨려 쿠바로 달려가 그가 만난 한국인 마사 김 여사. 쿠바에서 태어나 70평생을 쿠바에 살며 때 되면 한복을 꼭 입는 마사 김을 만난 뒤 김대실은 ‘모국’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한결 홀가분해 졌다. 오랫동안 찾고 있던 모국은 바로 지금 내가 발을 붙이고 애정을 쏟아 붓는 곳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서서히 굳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모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김대실의 눈에는 흔들리는 눈물이 고여 있지만 또 다시 길을 떠나는 그의 가슴엔 들판의 정경(情景)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의 들판은 갈대를 울리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지만 더 이상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모국을 떠나 타향을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돌아와 우리 모두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 줄 때, 우리 시대의 역사시인, 영화감독 김대실을 사랑하는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는 우리를, 김대실 그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3월 17일~20일 맨해튼에서 열리는 ‘뉴욕영화제(Korean-American Film Festival New York/ www.kaffny.com)’에서 김대실 감독이 만든 영화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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