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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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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승선기’ 다시찾은 나침반(4) 황우석을 찾는 애절한 목소리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1-06-21 (화) 10:10:19

“신부님, 신부님, 정말 영어의 에이 비이 씨이만 알고 미국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소하신거예요?”

김기수 신부와 만나 얘기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들은 스토리에 대해 물었다. “들었다는 얘기의 굵은 줄기는 대충 비슷하고, 나머지는 말한 사람의 각색인 것 같은데...하여간 천신만고, 우여곡절을 거쳐 사제(司祭)가 되는데 9년이 걸린 건 사실이니까….”

충청도 억양이 밴 말투로 어눌하게 말하던 김 신부는“그래서 지금은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말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니까…”하며 씨익 웃었다.

본인이 인정한대로 김기수 신부는 한 문장을 마치는데 꽤 시간이 걸릴만큼 말재간이 없었지만, 카톨릭이면서도 유학온 이래 오랫동안 미사 참례를 하지 않았던 나를 다시 하느님 앞에 나아가 무릎꿇게 만든 분이며, ‘원더우먼’으로서 거창하게 인생의 계획을 만들며 우쭐대던 나를 ‘하느님의 종이오니’를 깨닫게 해 준, 내가 만난 가장 겸허(謙虛)한 사제이기도 하다.

이제 ‘제 6회 한국여성포럼: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 황우석 박사, 김기수 신부, 방지각 목사, 김영덕 박사, 박용관 박사를 연사로 모시고, 송정아, 김동미의 사회로 2004년 6월 4일,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초기에 썰렁하던 분위기와는 달리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황 박사를 보기위해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몰려들어 대성황(大盛況)을 이뤘다. 물론 황우석 박사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이기도 했지만 청중들은 “사랑을 위해 도주하며 어른이 되었다”는 김영덕 박사의 얘기에 매료되기도 했으며, “나를 남자로 초청해 준 이 행사가 고맙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한 김기수 신부가 ‘사제로서의 삶’을 들려줄 때 감동의 물결로 출렁였다.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언론사들은 일제히 황우석 박사의 강연을 대서특필(大書特筆)했고, 기사들을 훑어 내려가던 나는 ‘대한민국은 21세기 의학혁명 메카’라는 헤드라인으로 다른 언론사들의 기자와는 다르게 행사를 취재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6월) 4일 저녁 플러싱 서울플라자 크리스탈볼룸에 자리한 300여 명의 청중은 중년의 한 신사가 내뿜는 열정어린 강연에 잠시도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고 때로는 소박한 유머로 웃음을 자아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충청도 벽촌에서 쇠꼴을 먹이던 소년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자로 우뚝 선 그이의 진정어린 강연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황우석 박사(50). 세계 최초로 인간의 복제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배양, 인간의 난치병치료라는 기적의 단초를 일군 그이의 강연이었다. -중략- 모든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손기술이 좋고 창의성과 성실성을 갖춘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구에 매진하는 한 대한민국은 꿈의 21세기 의학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하 생략)-

기사를 쓴 기자는 다름아닌 ‘스포츠서울’의 노창현 국장이었다. 황우석 박사를 초청해 놓고 당시만 해도 무명인 그를 한인사회에 어떻게 홍보해야하나, 초조해하며 망설일 때 송정아 기자를 앞세워 발빠르게 황우석 박사를 대대적으로 알렸던 노창현 국장이 쓴 기사는 여느 신문사들과 아주 달랐다.

기사에는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었으며, 행사장에서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알리는 황우석 박사가 자신의 집념(執念)이 구원(救援)의 빛이 된 기쁨의 음성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행사장에서 눈인사 정도 나눈 노창현 국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끔한 체육선생, 아니 농구코치같이 생겼던 노창현 국장님...감사합니다’를 속으로 뇌이며 ‘노창현 기자’가 쓴 기사를 오려 소중하게 챙겼다.

행사는 끝났지만 날이 갈수록 행사의 열기가 가열(加熱)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황우석 박사를 만날 수 있습니까?”

“그 날 황우석 박사가 강연한 내용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전국방방곡곡에서 개인이나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문의하는 전화에 숨돌릴 새가 없었다. 그 애절한 목소리 가운데 뜻밖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엄청난 에너지와 학벌로 마치 세상을 진흙처럼 주무를 것 같았던 C의 누이가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했다.

“C를 돌봐야 하기때문에 황박사 강연에 못가봤어. C가 오토바이사고로 10년 째 누워 있단다. 글쎄. 이제 우리 집은 만신창이가 됐어. 황 박사를 만나게 해줘 응?” C의 누이는 애원하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 ‘뉴스로 승선기’는 마지막 5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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