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순경들이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우리 가게에 아인슈타인 박사를 데려왔어요. 이틀이 멀다하고 우리 가게를 들르던 그 분이 그 날은 우리 가게로 오는 길을 잃으신 거죠. ‘로스만 스토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아인슈타인 박사를 데려 온 순경들이 우리 아버지에게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이 양반 길찾는 일보다 이발이 더 급한 것 같다’고 했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헤어스타일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잖아요.”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의 선율(旋律)을 따라, 로버트 로스만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본 아인슈타인 박사에 대해 회고하는 일화(逸話)가 오버 랩된다.
비 내리면 내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는 필립 글래스의 역작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는 것이다. 로버트 로스만이 들려 주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아버지 데이빗 로스만과의 ‘30년대식 대화로 가득찬 우정’으로 쓴 아인슈타인 박사의 전기(傳記)에서 읽었던 몇 구절을 떠 올리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달콤한 잠까지 밀려 온다.
해마다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아인슈타인은 ‘로스만 스토어’의 주인 데이빗 로스만이 보여 준 친절과 우정에 대해 ‘내가 보낸 가장 행복한 여름’이라고 적힌 탱큐노트를 자주 보내곤 했단다.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로버트 로스만의 눈에 비친 대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해변의 오두막집에서 지내며, ‘정크(Junk)’라고 이름붙인 배를 타고 마냥 즐거워하던, 그리고 때때로 노을지는 해변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60대의 허름한 남자였다고 술회(述懷)한다.
꽃미남도 아니요, 엔터테이너도 아닌 그에 관한 전기들이 셀 수없이 많지만, 나는 로버트 로스만이 술회하는 이 대목을 제일 사랑한다. 아인슈타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의 헤어 스타일을 놓치지 않은 경찰의 예리한 눈에 감탄을 금할 수 없음이 첫째 이유요, 또한편 친구의 가게가 뻔히 보이는 길목에서 길을 잃은 아인슈타인의 표정을 상상하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앨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 20세기의 최고의 과학자로 알고 있을 뿐, 아인슈타인의 과학세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내가 그에게 매료(魅了)된 것은, 그 유명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보았던 1984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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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위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1976년에 완성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 ’은 5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중간에 휴식시간도 없이 계속된다는 이 오페라에 대해 들은 이후, 이 작품을 보고 싶어 안달하던 내가 마침내 84년에야 비로소 소원성취한 셈이다.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의 일대기가 아니라, 20세기 정치, 문화, 종교, 철학, 예술을 바꾼 아인슈타인의 거대한 발자취가 상징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없는지라 5시간동안 관객은 자유롭게 극장을 드나들 수있다. 공연을 보다가 나가는 것도 자유, 들어가는 것도 자유다.
다섯 살때 아버지가 준 나침반에 흥미를 보였던 유년기에서부터 전기공으로 밥벌이를 해야 했던 절박한 시절에 전기공 양성학교의 입학시험에 실패했던 청년기를 거쳐 상대성이론을 창시한 20세기 최대의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아인슈타인의 저력은 자유롭게 창조하는 탐구정신이었다.
아카데미적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탐구한 결과로 마침내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거인 아인슈타인이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과학자라기보다 권위와 파괴를 증오했던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유태인으로 차별받았던 그는 학대받은 사람들 편에 섰고,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피해 1933년 미국으로 망명(亡命)한 뒤, 차별받는 흑인들을 위해 인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평화주의를 부르짖던 그가, 에너지 방정식가설로 가장 파괴적인 무기인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제조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초래(招來)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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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과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경쟁이 과열되자 1955년 사망할 때까지 핵전쟁방지에 혼신(渾身)의 힘을 기울였던 아인슈타인의 이상주의는 정치인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공간과 시간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의 유동에 따라 달라진다는 4차원의 시공세계를 인류에게 남긴 그에게도 인류평화는 난제였다.
흐르는 음악사이로 석양으로 물든 수평선을 바라보며 해변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그의 음성을 듣는다.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란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 되는 미스테리일 뿐이다.”
by Dong-sin Hahn opwo@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