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연락이 안되던 사람과 우연히 전화가 연결 되었다. 우울증(憂鬱症)을 앓았다며 누구와도 말하기 싫고 혼자 있고 싶었고,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좋아졌다고 한다.
나도 마흔 고개 넘으면서 지독한 우울증으로 오랫 동안 힘들게 보냈다고 하니, 당신같이 외향적인 사람에게도 그런 증상이 있었냐며 반가워하며 공감을 표했다.
한국 유학생으로 왔다가 결혼하게 되서 주거지를 뉴욕으로 옮기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서 새 삶을 시작했던 시절에는 몇 번이나 죽도록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조금 안정되고 결혼하고 아이들도 양육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사십이 되니 내가 여태 뭐하고 지냈나를 생각하게 됐다. 
괜한 눈가에 주름만 신경 쓰여 져서 성형외과에 문의도 하러 다니고, 거울 앞에만 앉으면 많이 늙은 것 같아서, 비가 와도 슬프고, 눈이 와도 슬프고, 남편(男便)이 잘 해줘도 우울하고, 못 해주면 더 우울하고, 온통 세상이 슬프게만 보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우울증의 골짜기를 지나고 보니 아주 좋은 점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내가 겪어본 일이라서 현재 고통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 해 줄 수 있는 폭이 넓은 사람으로 성숙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그런 우울증을 겪고 나니 인생에 대해서 더 풍부하고 넓게 생각하며, 조그만 것에서도 만족하며 기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인생은 영원히 사는게 아니고 영어의 표현같이 ‘Expire’ 배터리가 수명이 다하면 쓸 수 없는 것같이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있으므로 한정된 삶의 기간 동안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골고루 맛보면서 매일의 삶이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사랑하고, 배우며, 발전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작고 큰 목표에 도전하며, 익숙해지며, 이해하고 용서하고, 옳지 않음에 분노하고, 남을 수용하고, 좋은 점은 모방하고, 끊임없이 줄기차게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야 할 의무와 가치가 있는 것이 인생이다. 
남의 의견에 너무 속박되지 말고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싫어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나를 좋아하고 따르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므로 너무 이목에 집중하거나, 누가 나에 대해 말을 해도 담담해야 한다. 
남들은 나를 좋아해도 말을 하고 의견이나 행동이 맘에 안들어도 말을 한다, 어떤 때는 심심해서, 외로워서, 관심이 있어도, 부러워도 얘기하게 된다. 
그러나 내 판단에 정당하면 담담하게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자. 남의 비위 맞추려다 실망하고, 실수하고, 섭섭해 하다 자칫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요새 한국에선 인터넷 상의 악플로 타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고, 과격한 언어로 오물을 끼얹는 것 같은 정신적인 테러를 거리낌 없이 하는데, 이는 개인주의가 발달하였지만 나의 자유는 인정하면서, 남이 누려야 할 자유의 공간을 존중하지 못하는데 있다. 
더럽고 무서운 독소 투성이의 비겁한 언어로 얼굴 안 보인다고 함부로 남의 웹사이트 찾아 다니며 자기의 외로움을 남에게 돌질 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이것들도 발달의 과도기에 반비례하는 부작용들이다.
우울증에 안 걸리려면 혼자 있지 않는 것이 좋다. 자살충동이나 우울증은 외롭거나 고독할 때 걸리기 쉽다. 외롭지 않으려면 부자가 아니더라도 콩 한 쪽이라도 사람들과 나누고 살자. 남의 괴로움이나 어려움에 동참하고 베풀면 행복해 진다.
 
성격이 점잖거나 조용하거나 내성적이더라도, 푼수를 떨며 친구나 주위사람들에게, 동네 이웃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 건네고 ‘리치 아웃’ 해 보라. 절대 외롭지 않다. 
이렇게 사노라면 어디 우울증 퇴치만이랴, 너무 신나고 바빠서 어떤 때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성가실 정도로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