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원전비상사태는 남아공 거주 한국인들에게도 큰 관심이 가는 사안이다. 한국에서는 뉴스의 20분 이상을 온통 일본 뉴스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이곳 매체들은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다.
급박한 일본의 상황을 실시간 뉴스로 듣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인터넷을 통해 해갈(解渴)을 할뿐 TV에서는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뉴스 끝 부분에 살짝, 또는 맛보기 정도로 나오다가 끝나버린다.
대지진 초기에는 신문 1, 2면을 장식했지만 지금은 시들해진 상황이다. 지난 18일자를 보면 전면이 아니라 반페이지 분량에, 그나마 11면에 실린 것이 고작이다. 20일 TV 뉴스에서는 일본 사태에 관한 뉴스를 찾아보기조차 어려워 관심이 없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뼈가 사무치도록 일본에게 당한 한국이건만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성금모금을 하는 등 일본 사태로 뉴스를 도배하는 한국과는 정말 대조적인 남아공의 분위기를 보게 된다.
며칠 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교육차원에서 어셈벌리(조회)시간에 쓰나미가 어떤 것인지, 일본을 덮치는 쓰나미 영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국의 한 유명 DJ는 전국 채널이건만 당당하게 “우리나라에도 도와줘야 할 가난한 사람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에게 후원 할 의향이 없다”고 발언을 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흔쾌히 10억 기부(寄附)를 해서 주위 동료들, 국민들의 성금 모금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계기가 된데 반해 남아공의 디제이의 공식적인 이 발언은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킬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남아공이 일본과 진정 어떠한 우방 관계인가. 한국과 일본은 또 어떤 관계이기에 이역만리에 있는 한인 동포들이 그 뉴스에 목말라 하는가. 나 역시 피해규모와 해결방법을 이렇게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3월 16일자 “Cape Argus”에 정부차원에서 물자를 지원한다는 뉴스가 실렸다. 다음날 비행기로 출발한다는 것과 일본 적십자사를 통해서 후원 할 수 있는 방법도 상세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아공에서 개인이 일본에 기부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일본 사태로 복잡한 심사에 빠져 있지만 정작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특별한 주말을 맞은 덕분이다. 돌아오는 월요일이 “Human Rights Day”로 공휴일이어서 토, 일, 월요일. 사흘을 쉴 수 있게 됐다.
▲ 주말을 맞아 해변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남아공의 아이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은 12월 10일이지만 남아공의 Human Rights Day는 3월 21일이다. 남아공 인권기념일이 이날이 된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악명높은 인종차별(人種差別)을 펼친 아파르트 헤이트(apartheid) 정권 시절에는 인종과 출생신고 등 상세한 내용이 있는 신분증을 소지해야만 통행(Pass Law)을 할 수가 있었다. 마침내 이에 격분한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칸 민족회의가 봉기했다. 1960년이었다.
그해 3월 21일 요하네스버그 남동쪽의 베레니깅(Vereeninging) 인근에서 경찰이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발사해 69명이 죽고 180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베레니깅의 이웃 마을 샤프빌(Sharpvill)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전 세계가 비난했고 아파르트 헤이트가 집중포화(集中砲火)를 맞게 된다.
사실,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참혹한 살상 숫자에 비교되지 않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3월 21일 이후로 “샤프빌 데이(Sharpvill Day)”는 인종차별 정권이 흑인 사회에 가한 잔혹함으로 영원히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하여 이 날을 “Human Rights Day”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일 한국이 일본이 아닌,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면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남아공까지 영어를 배우겠다고 외로이 와 있게 되었을까.
그래도 ‘신사의 나라’라는 소리를 듣는 영국이었다면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민족을 팔아먹으면서까지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비인도적인 처사를 감행했을까.
영국이나 일본이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인 제국주의 침략국에 불과한 것을.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남아공에서 씁쓸한 역사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