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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죽음(上) 남아공의 장례문화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1-11-23 (수) 13:59:58

수요일인 내일, 투게더 모임(두 구역이 합해서 가정예배를 보는 모임)이 집에서 열려 점심메뉴로 비빔밥 준비와 다과를 준비하느라 하루 내내 바빴다.

요즈음 통 음식을 하기싫어 우리 애들이 이대로 해주는 밥만 먹고 살다간 아마 영양실조에 걸렸을 것 같다. 화재 난 이래로, 그럴듯한 밥상을 차려먹은지 꽤 오래 된듯 하다. 몇달동안 주방에 설치되지 않은 스토브 문제로 야외용 부탄가스 하나 갖고 국이나 찌개를 끓여서 한끼한끼를 때우다시피 살아 왔다.

부탄가스 한개가 22랜드(3,000원), 부재료를 합하면 100랜드(15,000원) 정도 드니까 음식을 사먹는게 경제적이다 싶어 하루가 멀다하고 외식을 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나름대로 손익분기점를 억지로 맞춰서 한 것이다.

그런 생활을 몇 달 하다 보니 손님맞이를 하며 항상 스페셜한 음식으로 분위기를 돋구던 취향이 바뀌었는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이달 말에 이사를 한다는 강박관념 탓인지 편치 않은 마음으로 혼자서 불평도 늘어 놓으면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학교 갔다 온 지가 언제인데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숙제와 알림장을 정리하던 3학년 아들이 주방에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한다.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 엄마, 오늘 벤 엄마가 죽었대.” “으응? 상연아, 그런 말로 장난치는 거 아니다.”

그러자 아들이 억울하다는 듯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야, 오늘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랬어, 밴의 엄마가 친구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친구가 브레이크를 대신 엑설레이트를 잘못 밟아 밴의 엄마를 치었는데 그 자리에서 죽었대.”


“뭐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며칠 전만 해도 가라테 체육관에서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고 나와서 만나지 않았던가? 설마?, 믿기지가 않았다.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사실이라면 이 상황에 전화를 하는 것이 결례(缺禮)인지도 몰라 망설였다.

하지만, 너무 궁금해서 확인을 해야만 잠을 잘 수가 있을 것 같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낯선 여자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사실확인을 하니 “It’s true.” 그리고 자신이 딸이라고 소개까지 한다.

이혼한 밴의 아버지 핸드폰으로도 전화를 걸었다. 사실이었다. 가서 아이들에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내일 오후 5시 50분경에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믿어 지지 않았다. 얼마전에도 상연이 담임 선생님의 남편이 죽어서 깜짝 놀랐는데...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나마 금방 잊혀질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 스코트(Christina Scott)는 내가 외롭게 남아공에서 살면서 조카인 지현이 친구 엄마로, 상연이 친구 엄마로 4년째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부부가 이혼했어도 학교에서 부모 참석 수업시간에 함께 나와 자녀 사랑을 과시했고 나하고도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주어진 과제를 풀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방송 프로그램도 맡았다고 자랑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매년 할로윈 파티에는 지현이와 상연이를 초대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10월 31일 할로윈 데이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음식 준비에 열중하다가 너무 떨리는 가슴때문에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의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다음날 두 구역이 합친 투게더 모임에 모두 열네 분의 손님들이 와주어서 정신없이 예배와 식사를 끝냈다.

 


모임을 마치고 크리스티나의 집으로 갔다. 당장이라도 환하게 웃으면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 줄 것 같은 현관문은 조용했고 집을 감싸고 있는 만발한 볼겐빌라 꽃은 주인을 잃은지도 모르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손때 묻은 크리스티나의 모든 물건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섰다. 텅빈듯한 고요와 슬픔이 두 어깨를 짓눌렀다.

 

▲ 크리스티나의 손때가 묻은 조립식 장식품들

울음에 지친 앨리(Ally)를 만나는 순간 붉어지는 눈시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앨리의 퉁퉁 부은 두 눈은 충혈이 되어 있었고 아직 3학년 밖에 되지 않은 밴(Ban)은 혼자서 방에서 틀어 박혀 있다가 인사한다고 나왔지만 축 늘어진 어깨와 눈은 먼 허공을 보는 듯 했다.

갑자기 엄마를 잃은 강아지들이니.. 오죽 하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천진난만하고 장난기가 다분했던 그녀였다. 애들을 항상 다정하게 껴안으며 놀아 주던 크리스티나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두고 갔으니 하늘나라에서도 두 눈은 감을 수 있을까.

처음 보는 흑인과 칼라(Color 혼혈아) 아이가 주방에 앉아 있었다. 다가오더니 말을 한다. 어제 전화 받은 사람이 자기였다고. 앨리의 언니라고 한다. 입양된 아이라는데 그 이야기는 금시초문(今時初聞)이었다.

앨리 아빠는 러스텐버그 쥬니어 홀에서 장례식(葬禮式)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참석한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 왔다.

 

▲ 만델라를 유달리 좋아했던 크리스티나

캐나다에서 출생한 크리스티나는 론데보쉬 지역에서 앨리와 밴 두 아이를 양육하며 혼자서 살았다. 직업은 사이언스 저널리스트이면서 SAFM 채널 방송의 일을 했다. 남아공 과학 저널계에서는 꽤 유명한 기자였다.

이혼한 남편은 대학교수인데 이들의 양육의 방법은 참, 특이하다. 주중은 크리스티나가 돌보고 주말은 핫 베이(Hot Bay)에 살고 있는 아빠가 데리고 갔다가 일요일에 론데 보쉬로 돌아오기를 5년째 반복하고 있었다. 아빠는 가정적이고 애들에게는 자상했기에 조심스럽게 크리스티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웬만하면 같이 살지…, 왜 이혼을 했어?” “너라면 매 맞고 살 수 있겠냐?..” 너는 그 고통을 아냐는듯 묘한 표정이었다. 그래, 부부간 일은 부부만이 아는 법이니까.

이른 아침, 우편함에 꽂혀진 지역신문을 차안 한 쪽에 쳐박아 두었다가 오후에야 애들 학교에서 페치 시간에 펼쳐 보았는데 놀랍게도, 신문 1면에 크리스티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져 있었다. 관련기사는 5면까지 이어서 연결되었다.

 

어둔 영어 실력이었건만 지인의 뉴스여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해 왔던 그녀는 남아공에서도 인지도 있는 유명인사였다. 그 정도 화려한 이력인 줄도 모르고 지난 몇년을 지냈던 것이다.

 

<중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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