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소 여성에 관심이 많다. 뉴스를 검색해도 여성과 관련된 소식에 먼저 클릭질한다. 2013년을 관통하며 이런 저런 여성들이 미디어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한 해를 반추(反芻)하며 이들을 떠올려 본다.
권은희
2013년에 가장 아름다웠던 여성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진상규명에 노력한 훌륭한 경찰이다. 불신의 대상이었던 대한민국 경찰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린 멋진 여성이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질문이랍시고 본안과 상관없는 더러운 인신공격을 일삼던 구캐의원 쓰레기들을 개똥으로 만들며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공직자로서의 강직한 태도를 기품있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제 1회 리영희상을 비롯해 시민단체들이 연말을 맞아 선정한 각종 상을 받으며 그녀를 향한 시민들의 지지를 확인했다.
photo by 뉴시스 조성봉기자
청문회에서 구캐의원 새끼들의 아가리에서 분출된 저질 질문들은 올해의 우문으로 권은희 수사과장의 답변들은 올해의 현답으로 기록될만 하다. 조명철: “권과장님은 광주의 경찰입니까, 대한민국의 경찰입니까?” 권은희: “질문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당연히 대한민국의 경찰입니다.” 김태흠: “솔직히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길 바랬죠?” 권은희: “위원님의 질문은 헌법에서 금지한 십자가밟기와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 밟기란 과거에 기독교인들을 색출하려고 땅바닥에 놓인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게 했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악행을 말한다.
임은정
검찰청에서 생계를 도모하는 율사(律師)중 진정한 검사로 평가할 수 있는 희귀한 사례다. 독재정권 시절 정치사건에서 내려졌던 사법부의 부당한 유죄판결을 뒤집는 무죄선고를 소신있게 실천했다. 시대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며 권력에 꼬리치는 애완견인 상관 새끼들의 압력을 의연하게 물리치고 사람에게가 아니라 법적 양심에게 복종하는 검사의 이상향을 현실로 구현했다.
photo by 뉴시스 박문호기자
임은정 검사는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던 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을 담당했던 일명 ‘도가니 검사’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며 일기장에 남겼던 글을 보면 법의 원래 소명인 인권보호에 그녀가 얼마나 사명감을 갖고있는지 알 수 있다. 임은정 검사의 올바른 행동에 검찰은 징계로 화답했다.
레이디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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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여성이다. 영국 나이트 클럽에서 신곡을 발표하며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알몸을 만방에 과시했다. 성적 코드와 대중음악의 유착관계가 갈수록 심화되는 요즘이지만 내용없는 엽기행각의 반복은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시종일관 센세이녈리즘을 쫒는 미디어의 생리를 적절히 이용해 자신을 향한 주목도를 극대화시키는 영리한 엔터테이너다. 그의 행보를 보면 성적 코드가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방식이 드러난다. 아직 젊기때문에 앞으로도 여러번 미디어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박근혜
자기만 아는 여성이다. 본인의 생각에 반하는 모든 의견을 묵살(黙殺)하거나 반대파는 신속하게 조져버리는 냉철한 권력자다. 요즘 이 여성의 행태와 사고방식은 수령의 유일 영도체재를 추구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독재자의 후손인 공통점에다 무심한 얼굴표정으로 본인의 의도를 집요하게 관철시키는 특징에서 김정은과 매우 유사한 동류다. 행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면 비애국인 사고방식으로 견제세력을 혐오하는 그의 태도에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건국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고 동시에 여성 대통령과 올바른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개념임을 입증했다.
최연혜
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이다. 그는 예전에 신문 칼럼에서 철도 민영화는 국익에 반한다며 쌍수를 들고 반대하더니 지금은 코레일 사장으로 입장을 180도 바꿨다. 최근엔 매우 웃기는 발언으로 여러사람 빡치게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photo by 뉴시스 전진한기자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은 7,843명의 사랑하는 직원들을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위해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걸 요즘 말로 개드립이라고 한다. 공직자과 시민의 관계를 혈연지간에 비유하는 허튼 소리엔 지극히 봉건적인 발상이 깔려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과와 공사 사장은 민주주의 체제하에 시민의 동의로 권한이 위임된 임시직 공무원이다. 지들이 뭐라고 부모행세하며 허튼 위엄을 떨고있는가. 근대국가의 시민인 나는 그에게 말한다. “노동자들이 네 새끼냐?”
정미홍
photo by 뉴시스 김진아기자
그닥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여성인데 잠깐 만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유는 성추행범 윤창중을 과도하게 쉴드쳤기 때문이다. 윤창중을 비판한 사람들을 모두 종북좌빨로 몰며 최선을 다해 윤창을을 엄호한 덕분에 여러 사람에게 비웃음 당한 묻지마 보수꼴통이다. 정치부 기자 30년에 청와대 대변인까지 역임하는 50이 넘은 사람이 성추행을 저지를리 없다는 엄청나게 비과학적이고 어이없는 논리로 윤창중을 옹호한 대목에선 그의 대가리 지수를 의심했다. 성추행과 인생경력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연구보고서라도 나왔나 찾아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참고로 인턴 직원과 붕가붕가했던 빌 클린턴은 심지어 대통령이었다.
패티 김
photo by 뉴시스 박문호기자
아름답게 늙는 전형을 보여준 디바다. 그의 음악을 많이 좋아한 적은 없지만 대중 예술인으로 나름의 일가를 이룬 그의 생애는 존중한다. 패티 김과 비슷한 경로를 밟으며 국민가수 대접받은 인물이 아마 조영남일텐데 그 아저씨보단 훨씬 덜 느끼하고 품위있다. 그녀가 은퇴의 용단(勇斷)을 내린 모습은 최근 앞서거니 뒷서거니 고위직에 복귀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힘차게 거꾸로 돌리고 있는 일군의 아저씨들과 비교된다.
이상화
photo by 뉴시스 김인철기자
모두가 김연아만 여신으로 추앙(推仰)할때 금년 시즌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본인의 세계 신기록을 스스로 네 번이나 갈아치우며 월드컵 시리즈와 세계선수권까지 7연속 금메달을 먹어치운 괴력의 스케이터다. 내 취향으론 김연아의 가녀린 아름다움보다 건강미 작살인 이상화의 자태가 훨씬 매혹넘친다. 그가 빙판을 내달리는 모습도 멋있지만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쿨하고 담백한 캐릭터 또한 매력돋는다.
박인비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다. 몸짱이 아니고 이쁘지도 않다고(내 눈엔 귀엽기만 하더만) 스폰서 하나 붙지않던 프로 골퍼로서 모욕스런 시간들을 견디고 무서운 퍼팅실력으로 LPGA를 평정했다. 역사상 최초인 한 해 4연속 메이저 제패는 이루지 못했지만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도 다시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다. 골프 코스에서 주말 골퍼들보다 흥분을 안하며 무심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멋있다.
에일리
어린 시절 찍었던 누드사진이 유출되어 한참 잘나가려는 찰나에 제동이 걸린 안타까운 재미동포 싱어다. 그나마 다행은 과거에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인 여성 연예인들이 되레 비난받고 매장당하던 낡은 관행이 현재는 많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사건이 터지자 에일리의 누드 사진을 게재했던 ‘올 케이 팝’이란 웹진을 더 많이 비난하고 에일리에겐 격려의 댓글을 다는 광경은 네티즌들이 때론 현명한 집단임을 보여줬다. 그가 시련을 극복하고 좋은 노래를 많이 부르는 가수로 성장하길 바란다.
김슬기
photo by 뉴시스 김진아기자
뒤늦게 발견한 매력 솟구치는 여성 연예인이다.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쌍욕을 잘하는지 그를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SNL을 관두고 연기자의 길로 방향을 잡은 행동은 장기적 관점에서 아주 현명한 전략이다. 그는 연기자로도 포텐이 충만하다. 김수미 선생과 찍은 가습기 쌍욕 CF는 희대의 명작이다.
이름없는 여성 청소 노동자
중앙대의 청소 노동자로 현재 파업중인 한 여성 노동자가 학교 화장실에 붙여 놓았던 편지글을 읽고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대한민국에서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은 아직도 2등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분은 ‘미화원 3층 아줌마’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글을 남겼다.
"학생들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요. 지금 미화원 아줌마들이 파업을 하고 있어요. 시험 기간에 깨끗하게 못해줘서 미안해요. 파업 정말 힘들어요. 우리 문제 해결 빨리 끝나는 대로 돌아와서 깨끗이 청소해줄게요. 학생들 사랑해요!-미화원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