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여행을 하는 걸까?
어떤 여행을 원하는 걸까?
코로나 시국에 결연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초심이 많이 흐려진것 같다.
아무리 좋은것을 보고 먹어도 별로 감동이나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설레임과 호기심은 가출한지 오래된 것 같다.
게으름을 여유라고 합리화한다.
빈둥거림을 최고의 힐링이라고 자뻑하며 지낸다.
내 유랑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되씹어보게 된다.
나의 지친 영혼과 육신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건 맞다.
보고 찍고 스쳐 지나가는 '눈으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길게 살아보면서 전혀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는 '가슴 여행'을 하고있는 것도 맞는것 같다.
그런데 말이지
아무리 멋진 표현을 둘러대며 떠들어봐도 현재에 안주(安住)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안락함의 꿀맛은 쉽게 뿌리칠수가 없다.
바람처럼 살자던 멋진 맹세도 한낮 구라가 되고 말았다.
치유와 회복과 안전을 핑계로 내세우며 길 위에서만 가능한 성찰과 도전과 모험을 미루고있다.
엉터리 사이비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매일 무작정으로 걸으면서 반성한다는 것이다.
뉘우침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을 회복해가고 있다.
떠나지 않았으면 이런 쓰잘대기 없는 카오스 따위는 겪지 않았을거다.
사추기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여행은 진짜 위험한 짓이다"
얼마 전에 떠난 유투버 빠니보틀이 내게 한 말이다.
제대로 여행의 유혹과 매력에 빠지면 블랙홀 같아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란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직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자넷 랜드의 <위험들>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린다.
그래 나는 게으르고 느리지만 죽는 날 까지 지구별 유랑(流浪)을 절대 멈추지 말자.
유랑을 통해 나를 변화 시키는게 나를 살게 할거라 믿는다.
써놓고 보니 마치 국기에 대한 맹세 비스꾸리한 여행에 대한 맹세가 된것 같아 쑥스럽지만 뱉어내니 한결 낫다.
여름 낙엽
무더운 날씨에 렌트 할 집을 찾아 며칠을 보러 다녔지만 마땅한 집이 없었다.
같이 지내는 김쉐프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괜찮은 렌트 하우스를 발견했다.
중개인을 찾아 함께 보러 갔다.
맘에 딱 든다.
바로 당일에 이사를 해버렸다.

마당과 나무 그늘에 꽂혔다.
마당의 나무 그늘 아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인터넷을 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꽉 막힌 벽이 없으니 가슴이 뚫린다.
나에겐 쉘터고 아쉬람이다.
공짜는 없는 법이다.
매일 수북히 쌓이는 낙엽을 쓸어내는 수고를 해야한다.
요즘은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고 새벽에는 22도까지 내려간다.
일반적으로 낙엽은 5도 이하로 내려가면 엽록소 파괴와 자기 분해를 통해 생존 채비를 한다.
그런데 공기도 땅도 바람도 모두 뜨거운 열대의 땅에서 이게 뭔 일이람?
녹색 잎파리 사이로 햇살이 일렁이며 쏟아져 내리면
땅 위의 생명체들은 기쁘게 들숨 날숨을 호흡하며 생존하고 성장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속절없이 흩날려 사라지는 것도 있더라.

여름 낙엽은 나에게 속삭인다.
변색(變色)한 잎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나무는 푸르름을 지킬수 없는 법이란다.
버려야만 새 살이 돋고 당당해지는거란다.
너도 버려라.
뒤돌아보지 말아라.
옛것, 추억, 그리움, 교만, 편협, 고정 관념, 아쉬움, 미움 따위는 다 떨어뜨려 버려라.
그건 낙엽이다.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고 잊어버려라.
너도 새로워져라.
앞만 보고 걸어라.
사랑, 긍정, 낮춤, 베품, 칭찬, 배움, 몰입, 꿈꾸기, 원만함 같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 채워라.
그건 싱싱한 새 잎새다.
스스로 노력하고 변해야한다.
충만감과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나는 착하게 대답한다.
"옛 썰!"
내 인생 2막을 잘 사는 방법은 오로지 버리고 변하는 것이 아닐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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