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1. 뭉클뭉클 태극기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도착하자마자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다.
인감증명서용 위임장을 발급 받기 위해서다.
외국에 있어도 대사관에 가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즉시 민원 서류를 발급 받을수가 있다. 참 편리하고 좋은 제도다.
대사관에 가니 입구에 세워진 태극기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저절로 발길이 멈춘다.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역만리 아프리카의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는걸 보니 가슴이 뭉클 앤드 뭉클하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부르던 노래가 저절로 떠올랐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예전에 줄줄 외웠던 국기에 대한 맹세도 떠올랐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
나의 운명 대한민국!
사랑한데이~
대사관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이나 한남동처럼 대사관 밀집지역에 있다.
하얀색 2층 짜리 건물 4개가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다.
대사관과 코이카 직원이 함께 사용한다.
언덕 아래로는 골프장 전경이 펼쳐진다.
어마무시 으리뻑적지근하다.
예전 같으면 좀 비판적인 시각으로 봤을꺼다.
지금은 아니다.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수준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 우리도 잘사는 나라가 됐으니 이 정도 뽀대는 내야지 ~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는것 같다.
오랫만에 으쓱으쓱 어깨뽕 좀 넣었다.
태극기가 나를 기분 좋게해서 마음을 너그럽게 만든거 같다.
2. 대사관 민원 서류 발급 업무를 좀더 발전 시키면 좋겠다.
여행 할 때 가급적 대사관, 경찰서, 병원은 가지 말아야한다.
그런데 나는 여행을 오래 하다보니 안가본데가 없다. ㅠㅠ
특히 대사관은 이런저런 일로 많이 갔다. 스페인, 터키, 이집트, 쿠바(kotra 업무대행), 쿠웨이트 등등
한국 직원들은 모국어가 통하고 친절해서 마치 고향집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위임장 발급 얘기를 해보자.
1통 발급에 4달러, 즉시 떼준다. 역시 한국의 민원 서비스는 세계 최고다.
이걸 한국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보내려면 DHL 오피스로 가야한다.
길을 모르니 택시를 탄다.
르완다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요금이 11만원 정도다.
일주일 쯤 걸린다.
터키에서는 우체국 등기 속달이 약간 싸기에 이용했다.
6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다시 떼서 보냈었다.
전 세계에 나가있는 한국인들이 민원 서류를 발급 받아서 한국으로 보내는 총비용을 계산해 보라.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외국 회사 열심히 돈벌이 시켜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다.
그걸 활용하면 좋겠다.
참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대사관에서 발급 신청만 한다. 수령은 내가 지정한 대리인이 한국의 주민센터에 받게한다>
돈과 시간을 크게 절약할수 있다. 우리의 IT능력으로 가능하고도 남는다.
혹시 페친중에 공무원이신 분이 있으면 이 아이디어 퍼다 활용했으면 좋겠다.
개선 효과를 금액으로 파악해서 제도 개선이나 창안으로 제출해서 상도 받고 포상금도 받으면 좋겠다.
댓가는 필요없다
오픈 소스라 모든건 프리 공짜다. 개선만 이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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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살,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
- 내 인생의 마지막 유랑

나이 70에 혼자서 여행을 떠난지 194일 째다.
어느새 반 년이 휘딱 넘었다.
나름 여유롭게 즐여하고 있다.
5년 전, 65살이 되던 해 나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한국을 떠났었다.
계획도 준비도 아무것도 없었다.
빠삐용이 자유를 갈망하며 절벽에서 뛰어 내릴 때 처럼 비장한 각오 뿐이었다.
고군분투하며 2년 동안 49개 나라를 유랑했다.
돌아와서 책을 썼다.
1년4개월 동안 노트북과 씨름했다.
제목이 촌스럽게 길다.
<철부지 시니어 729일간 내 맘대로 지구 한바퀴>다.
완전히 쌩고생 스토리다.
호구짓, 헛발질, 후회, 자책감, 고독, 외로움, 그리움 등으로 가득하다.
그리고나서 코로나로 2년 동안 발이 묶였다.
계획했던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여행'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2년을 국내에만 머문다는게 너무 힘이 들었다.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여행하다 병 걸려 죽으나 방구석에서 우울증 걸려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살만큼 살았다.
후회도 아쉬움도 두려울 것도없는 나이다.
하고 싶은 것 참고 오래 살기 보다는
하고 싶은 짓 하다가 원없이 죽는게 낫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춤추며 살기로 결심했다.
나의 미뤄 두었던 위시 리스트의 땅 아프리카를 홀로 유랑하는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읇조려 본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자뻑인줄 알지만 좋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인데 자뻑 쫌 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지난번 처럼 돌아와서 정리한다고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돌아가면 바로 책으로 내고 싶다.
그리고 나면 바로 또 다시 떠나고 싶다.
그래서 매일매일 여행 일기를 쓴다.
내가 직접 해보니 70살은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가 분명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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