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 마초? 친절하고 가정적인 무슬림

무슬림은 모두가 마초들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담배는 피우지만 술은 마시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친절하고 가정적이다. 휴일이면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많이 본다.
밤 문화도 매우 건전하다.
다합은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자기가 직접 가게에 가서 사와서 마실수 있다. 음료수를 시키면 자가 주류 반입(搬入)은 눈 감아준다.
주류를 판매하는 바가 있긴 하다.
판매 허가증 받는 비용이 비싸서 큰 호텔에나 몇 군데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카지노 허가 받기 만큼 어렵다.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는 밤 10시 쯤이면 문을 닫는다.
아쉬운 청춘들은 해변 사이드에 3~4군데있는 라이브 카페를 찾아 열정을 발산한다.
술 대신 음료수만 마시고도 잘 논다.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 이지만 현지인도 제법 많다.
토요일이 가장 핫하다.

이집시안들의 축구 사랑은 뜨겁다. 경기가 있는 날은 거리에 대형 TV가 설치되고 인근 가게에서 자발적으로 제공한 의자가 놓인다. 대표팀 경기나 이집트 출신 축구 스타 샬라가 뛰는 경기가 있는 날은 박수와 함성과 한숨 소리가 교차되어 거리에 울려 퍼진다.
저녁이 되면 내가 묵고있는 숙소는 다합에 있는 한국인들의 사랑방으로 변한다.
킴쉐프가 시장을 봐와서 매일 다른 한식 메뉴의 밥상을 차린다.

모든게 프리다. 참석자들은 자기가 마실 주류나 음료수를 사가지고 온다.
22살 청년부터 30대와 40대 여성, 50대와 60대 남성들까지 다양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넘사벽 같은건 아예 없다.
긴 저녁 자리가 끝나면 라이브 바를 한두 군데 들렀다가 헤어진다.
비슷한 일상 중에서 가장 좋은건 한식 쉐프가 있어 매일 매일 입이 즐겁다는 것이다.
저녁마다 모여서 제대로 차려진 한국 음식을 나누며 웃고 떠들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가장 고급진 메뉴는 해산물이다. 수에즈 운하 쪽에서 냉장해서 가져오는 해산물들은 꽤 비싼 편이다. 어제 새우, 꽃게, 오징어 각 1kg에다 조개를 구입하니 1,200 이집트 파운드(약 95,000원)다.

거기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쿠킹 클라스를 운영하는 다이빙 샵 쥔장이 가져온 잡채와 닭백숙과 것절이가 합세하니 이건 완전 임금님 밥상이다.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다.
다합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도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로 사는 엑티브 세계인들의 쉘터다.
독거 노인 위문품
숙소의 현관문을 여니 바깥쪽 손잡이에 노란색 봉다리가 걸려있다.
이건 뭐임?

가지고 들어와서 꺼내보니 참치 김치찌게, 잡곡밥 그리고 슬라이스 카스테라 빵이었다.
분명 산타크로스는 렌트 하우스 쥔장이다.

독거 노인이 되고보니 마음이 많이 여려진다.
예전 같으면 그냥 고맙다고 받아들였을 일도 큰 감동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수고와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고보니 눈물이 나려한다.
아프리카 땅에서 최애하는 김치찌게와 잡곡밥이라니 꿈만 같다.
걍 아프리카 땅에 눌러 살고 싶어진다.
난은 물 보다 바람의 기운으로 산다.
사람은 돈보다 정으로 사는거다.
내 여행의 포커스는 좋은 구경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좋은 만남은 내가 바란다고 되는게 아니다. 행운이 이끌어 주어야 한다. 여행 복(福)이 따라 주어야 한다.
행운과 복은 가만히 있으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다.
선택이 선행 되어야 한다.
베드윈의 땅을 선택하길 잘 한 것 같다. 이집트에서 만난 행운과 여행 복에 감사한다.
설맞이 꽃단장 이벤트
섣달 그믐날 밤에 아프리카 땅에서 특급 작전이 펼쳐졌다.
이집트 홍해 바닷가에 있는 작은 마을 다합의 숙소에 함께 있는 동생들이 큰 형님을 막둥이로 변신 시키겠다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몽골에서 온 여행사 사장님인 킴 쉐프가 염색약을 준비해서 나를 거실 의자에 앉혔다.
난 기꺼이 영구가 되었고 거실은 폭소(爆笑) 폭탄이 터졌다.

내가 수염도 안깎아 덥수룩하고 염색도 안해서 온통 흰머리인게 보기 싫었나 보다.
폭삭 늙어 보인다고 설맞이로 면도하고 염색하라고 난리치는 통에 등 떠밀려 꽃단장을 했다.
할배의 변신(變身)도 무죄란다.
폭소 대잔치 한바탕하고 핸섬(?) 할배가 되어 라이브 카페로 가서 즐거운 송년의 밤을 보냈다.

나이를 잊고 모두 친구가 되는 최고의 여행을 하고 있다는걸 실감한다. 좋은 사람과 만나는 여행, 정이 넘치는 여행에 감사한다.
이번 설부터는 좀 더 많이 웃고 나누고 베푸는 여행을 해야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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