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行間)이란 문장에서 행과 행 사이의 간격을 말한다. 글과 글 사이는 자간(字間)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문장만 읽는다. 현명한 사람은 행간과 자간까지 읽어 낸다. 그 속에 감춰진 혹은 왜곡된 의미를 찾아내서 해석한다.
나는 한국의 언론과 정치에 대해 입을 다물어 왔다. 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말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같다. 그래도 입씨름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행간을 읽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 제주도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한국의 코바(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며 자진 출국 신고가 급증했다는 기사.
당시 제주도에 코바 확진자는 3명이었다. 그게 무서워서 더 무서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다. 팩트 체크 따윈 없다.
어떤 기자가 그걸 독고다이(일본어 도꼬다이. 카미카제 결사 특공대에서 유래. 혼자만 먼저 알아서 쓴 기사라는 기자 은어)했고 다른 기자들이 따라쓰기 한 것이다.
아니면 관계부서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베껴쓰기 한 것이다. 기자들은 확인 취재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코바와 연관시켜 날리면 먹힌다는걸 잘 알기 때문다.
우리나라는 출입처 제도가 있다. 정부나 기관마다 기자실이 있다. 기자들은 매일 기자실에 출근해서 기사꺼리를 찾아 데스크에 발제 보고를 한다. 발제란 무슨 기사를 오늘 쓰겠다는 계획이다.
며칠씩 기사꺼리가 없어서 발제를 못하면 안절부절 못한다. 대신 정보보고라도 해서 데스크가 노여워하지 않게 한다. 전날 저녁 출입처 간부와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도 좋은 소재다.
언론사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공짜로 월급 줄 수는 없다. 데스크의 눈치와 압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그래서 매일 한꼭지 두꼭지라도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출입처를 선호한다.
이야기가 옆길로 좀 샜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간다.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이 진짜 무서워하는 게 뭘까? 제주도에 중국인 발길 끊긴지 오래됐다. 수입이 없다. 만약 관광객이 많아서 돈을 잘 번다면? 코바 아니라 총알이 슝슝 날아 다녀도 그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는다.
출입국 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염(感染)을 염려해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최근 한국에서 일하던 직장이 문을 닫아 더는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떠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제주 출입국 외국인청은 불체자들이 자진신고하면 벌금이나 처벌을 면해주고 차후 한국에 입국할 때 불이익을 줄여주거나 없애주겠다고 했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 자기들이 얼마나 바쁘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홍보했다. 이런걸 계기홍보, 적시홍보라고 한다. 보도자료 배포하고 기자들은 베껴쓰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일반 독자나 시청자들은 기사를 보면서 중국인 불체자들이 한국의 코바가 무서워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한다고 액면대로 받아 들인다.
거기서 그치면 좋은데 유투브나 검증되지도 않은 논객들이 앞다투어 나서서 양념을 듬뿍 넣어 가공해서 확대재생산을 한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위험한 것이 증명된거다. 나라의 체면과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버렸다. 문통이 나라를 말아 먹어서 그런거다”라는 해석을 덧붙여서 포장한다.
다행히 오늘, 출입국 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염을 염려해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최근 한국에서 일하던 직장이 문을 닫아 더는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떠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라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처음 기사가 강하게 입력되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는 열렬 구독자들은 이미 한국이 중국보다 위험하다고 믿고 있다. 일단 입력되고 믿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 분들이다. 처음 보도기사 배포할 때 그런 분석이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중산층 이상이고 나이도 많은 점잖은 분들이다. 유식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커맹’이다. 커맹이란 커뮤니케이션 문맹이라는 말이다. 커맹 퇴치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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