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마흔다섯 번째 편지
벗님여러분, 그동안 격조(隔阻)했습니다. 오랜만에 소식을 드립니다. 사실은 지난 몇 주 제 일생에 가장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습니다. 졸지에 스스로는 세수도, 옷을 입을 수도, 신발과 양말조차 신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큰 딸이 네덜란드에서 영구 귀국해 집에 머물고 있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30년 전부터 다녔던 한방병원을 찾아 세 차례 침 시술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곳 한방병원 원장은 양의를 겸한 한의학 박사로 납득할 수 있도록 진단하고 처방과 시술을 통해 부작용 없는 자연의학으로 저를 치료해주셨습니다. 인생길에서 만난 소중한 벗님이셨습니다.
이번 고통을 통해 새삼 건강의 감사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인터넷 종교매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매주 두 차례 연재하는 프란치스코 교종 강론번역 때문에 종일 누워있지는 못하고 책상에 앉아 일했습니다. 편안히 누워있는 것보다 오히려 약간씩 일하면서 자주 스트레칭한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 수난 막바지, 사순절(四旬節) 고난주일(성주간)을 육체적 고통을 통해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과 더불어 자유로움을 얻게 된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즐겨 찾던 저의 ‘위대한 스승이자 자연의 교실’인 해변에 나갔습니다. 한 달 사이에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잔설(殘雪)이 쌓였던 해변 숲길에는 눈 대신 형형색색 온갖 꽃들이 만발합니다. 자연스럽게 ‘De colores'(데꼴로레스)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해변에 비둘기와 오리, 갈매기는 여전하지만 멀리 북에서 날아와 해변 잔디밭을 휩쓸던 캐나다거위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장거리 비행에 어려운 어린 것들과 이들을 보호하는 부모 거위들만 옹기종기 모여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이들은 올 여름 이곳에서 보내고 내년에나 일행을 따라 캐나다로 돌아갈 모양입니다.
제가 주차장에 빵부스러기를 뿌리자 멀리서 지켜보던 비둘기 떼가 몰려듭니다. 빵부스러기를 제법 많이 뿌렸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깨끗이 사라집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상점에서 구입한 사료를 푸대 째 뿌려댑니다. 비록 자동차가 이들의 배설물로 뒤덮이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새들의 모이를 주는 것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가까운 바닷가에는 물개 여러 마리가 머리를 내밀다가 잠수를 반복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도 한두 달 후에는 해변가에 해당화(海棠花) 향기가 그득할 것 같습니다. 저도 복용하는 약이 끝나면 지난 해 가을에 담가 둔 해당화 술을 약으로 한 잔씩 즐기려고 합니다. 역시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미국은 코로나 백신을 전 국민의 60%에 가까운 2억 명이 1차 접종을 끝내고 2차 접종까지 끝낸 사람도 7천7백만 명으로 인구의 23%가 넘습니다. 그러나 매일 신규 확진자도 5-6만 명을 넘나듭니다.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는 3,225만 명으로 인구 10%에 해당됩니다. 사망자도 58만 명으로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미군 전사자 총계를 뛰어 넘었습니다. 참으로 세기적인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성인의 90%가 한 달 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주지에서 5마일 내 백신접종 장소를 찾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제는 동네약국에서도 예약하고 며칠 기다리면 웬만하면 쉽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확산되는 것을 보면 백신이 만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지금은 4차 대유행이라며 계속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어 금년 내내 코로나에 시달려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러나 자연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면서 고통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는 계절입니다. 벗님여러분도 코로나 막바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마시고 승리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다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21년 4월16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