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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맹정음을 아시나요

〈오늘의 역사속으로〉 11월 4일
글쓴이 : 뉴스로 날짜 : 2026-11-04 (수) 17:00:09

〈오늘의 역사속으로〉 11월 4일

 



역사는 때로 거대한 함성으로 기록되지만, 때로는 작은 점 하나와 글자 한 획에서 시작됩니다. 11월 4일은 우리말의 맞춤법을 세우고, 시각장애인에게 문자의 세계를 열어준 날입니다. 한편 세계에서는 평화를 향한 희망이 암살의 총성에 꺾이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누구나 읽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역사의 발걸음이 이날 곳곳에서 이어졌습니다.

 

[세상을 움직인 장면들]

 

1920년|배재고 운동장에 울린 첫 전국야구의 함성

 

조선체육회가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오늘날 전국체육대회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대회입니다. 일제강점기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함께 뛰고 응원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은 공동체의 자긍심과 민족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식민지의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민족정신의 공간이었습니다.

 

1926년|‘가갸날’의 탄생, 훈맹정음을 알리다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첫 ‘가갸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당시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11월 4일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글날의 출발점이 된 이날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문화적 독립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같은 날 송암 박두성은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일본어 점자(點字)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말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문자 체계였습니다. 한글을 지키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글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2026년은 가갸날 제정과 훈맹정음 발표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1933년|한글맞춤법통일안, 우리말의 기준을 세우다

 

1933년 10월 29일, 조선어학회는 오랜 논의 끝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쓰던 우리말의 표기법을 정리하고, 말과 글의 기준을 세우려는 민족적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취는 식민지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어학회가 우리말의 규범(規範)을 세우는 동안, 조선총독부는 일본어를 ‘국어’로 강요하고 조선어 교육과 사용을 억압했습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으로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이 사실상 배제되고, 1940년대에는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 정책이 본격화됐습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1933년 통일안의 언어 규범이 어떤 한계를 지녔는지, 특히 두음법칙처럼 일반 한자어의 표기 원칙이 성씨와 같은 고유명사에까지 적용된 문제는 오늘날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9년|테헤란 미국대사관, 444일 인질의 시작

 

이란 혁명 이후 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들을 인질(人質)로 잡았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이란의 외교관계를 파국(破局)으로 몰아넣었고, 중동 정세와 국제정치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습니다. 혁명의 열망과 외교적 대립이 맞물린 사건은 국가 간 갈등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995년|평화의 길을 걷던 라빈에게 날아든 총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텔아비브에서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극우 유대인 청년에게 암살당했습니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하며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던 라빈의 죽음은 중동 평화의 희망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평화를 향한 길은 외부의 적뿐 아니라 내부의 증오와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2008년|미국 역사에 새겨진 변화의 순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오랜 인종차별과 시민권 운동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정치적 상징이 됐습니다. 그의 당선은 미국 사회의 변화와 다원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됐습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이태준(1904~1978?)|한국 단편소설의 거장

호는 상허. 《달밤》, 《복덕방》 등에서 근대 한국인의 삶과 시대의 그늘을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냈습니다. 한국 문장미의 정수를 보여준 작가로 평가받으며, 문장론 《문장강화》를 통해 한국 문장에 대한 깊은 성찰도 남겼습니다. 해방 이후 월북해 그의 생애 후반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 1916~2009)|미국의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미국 CBS의 대표 뉴스 앵커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베트남전쟁,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등 현대사의 주요 순간을 전달했습니다. 사실과 신뢰를 중시하는 보도로 미국 국민에게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언론이 권력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적 책임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찰스 가오(Charles K. Kao, 1933~2018)|빛으로 연결된 세계를 연 과학자

광섬유를 통한 정보 전송의 가능성을 개척한 중국계 영국 과학자. 광섬유 통신의 기반을 마련해 오늘날 인터넷과 초고속 통신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보이지 않는 빛의 길을 통해 세계를 연결했습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채응언(1879~1915)|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은 의병장

대한제국의 국권이 무너진 뒤에도 일제에 맞서 싸운 의병장입니다.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으며, 체포된 뒤 평양형무소에서 순국(殉國) 했습니다. 그의 투쟁은 의병전쟁의 마지막 불꽃 가운데 하나로 기억됩니다.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낭만주의 음악의 빛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 《한여름 밤의 꿈》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등으로 음악사의 한 시대를 빛냈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다시 세상에 알리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름다움과 균형을 추구한 그의 음악은 지금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성철(1912~1993)|한국 불교의 엄격한 수행자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지낸 선승으로, 평생 엄격한 수행과 청빈한 삶을 실천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의 한마디]

 

“문자를 지키는 일은 기억을 지키는 일이며, 그 기억을 누구에게나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문명의 진보다.”

 

가갸날은 우리말의 뿌리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시작됐고, 훈맹정음은 그 문자를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열어주었습니다. 맞춤법을 세우고, 문자를 나누고, 빛으로 세계를 연결한 사람들의 노력은 서로 다른 시대를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줍니다. 역사는 권력과 전쟁의 기록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읽으며,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넓혀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문명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앞서가게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함께 데려갔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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