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고등학교 시절을 사립 기숙 고등학교에서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정치계의 명문 가문 케네디 대통령이 이 쵸트 로즈메리 홀을 졸업하였습니다. 450에이커나 되는 거대한 대지위에 119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쵸트 로즈메리 홀 기숙 고등학교를 소개합니다.
▲ 이하 사진 www.en.wikipedia.org
이 학교 학생들의 하루 스케쥴을 살펴보면 일단 아침 7시에 기상하여 8시부터 수업 시작 그리고 3시에 수업 끝,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후 2시간 가량의 스포츠와 특기 교육 후 6시부터 저녁식사를 합니다. 8시부터는 함께 모여 숙제와 공부에 필요한 도움을 받으며 9시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또한 주말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종교에 따라 학교내에서나 가까운 타운으로 나가 예배에 참여할 수 있으며 오후에는 밀린 공부를 하거나 운동 연습 또는 음악실과 미술실, 극장들을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25 퍼센트의 학생들이 근처에 살면서 통학을 하므로 미리 허가를 받아 친구의 집을 방문하여도 됩니다.
현재 한국인 학생이 약 30명 정도 재학중이며 외국인 출신의 학생 분포는 전체 학생의 15 퍼센트 정도가 됩니다. 한국어 사이트에서 이 학교에 대한 선입견(先入見)으로 대부분 인종 차별 벽이 높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15 퍼센트나 입학 시키고 있으면서도 미국 출신의 학생들과의 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면 여지껏 쵸트의 다이닝 테이블은 시니어 섹션의 경우 ‘운동선수 학생용’, ‘흑인/라틴계/아메리칸 인디언 학생용’, ‘아시안 학생용’, ‘연극/뮤지칼 학생용’ 등등의 그룹을 만들어 앉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도 학생들을 서로 구별하게 만드는 데에 한 몫을 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몇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부호(富豪)들이 아이들을 보딩 스쿨에 보내기 때문에 돈에 관한 씀씀이가 학생들을 극심하게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봄방학 겨울 방학 동안에 유럽이나 카리브해 또는 세계의 각곳을 여행하고 온다든지 전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다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앟고 돌아오는 학생들은 그만큼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다른 기숙 고등학교를 포함, 학교 측에서는 “왜 한국 학생들은 자기네끼리만 뭉쳐 다니며 다른 나라 출신의 학생들과 이야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들 합니다. 언제든지 우리 자신이 변화를 시도하면 되는 것인데 언어와 문화의 차이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의 문제는 남이 만들기보다 내 스스로가 벽을 만들어 버릴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보딩 스쿨의 가장 큰 문제인 이 ‘하나로 어울림’은 우리의 의지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쵸트 로즈메리 홀은 원래 1890년도 커네티컷주 월링포드시의 크리스챤 스트릿과 엘름 스트릿 교차로 (현재에는 이 거리가 쵸트 로즈메리 학교 교정 한 가운데에 있음)위에 메리 워러 쵸트부인이 영국에서 갓 입국한 젊은 여학자 캐롤라인 럿즈리즈를 교장으로 하는 여학생들만의 교육장을 세움으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학교의 본관은 워러 가문의 몇 개의 건물중의 하나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0년후 캐롤라인 럿즈리즈는 로즈메리 스쿨을 코네티컷의 그리니치로 옮기고 그곳에서 향후 71년간을 여학교로서 최고의 명성을 날렸습니다. 럿즈리즈 교장은 친히 라틴, 그리스어, 불란서 문학, 역사 및 "간접적 여성학"을 가르쳤습니다.
그 사이 메리 워러 쵸트 부인과 남편인 윌리엄 쵸트 판사는 1986에 또 다시 마크 핏만을 교장으로 하는 남학생을 위한 쵸트 스쿨을 만들었습니다. 1904년도에 쵸트 스쿨은 4명의 남학생에서 40명 정원의 학교로 발전하였고 마크 핏만이 사망한 후 죠지 세인트 쟌이 새 교장으로 부임하여 40년간을 교장직에 있으면서 1948년에는 학생수가 550명이나 되는 큰 학교를 일구어 냈습니다.
1947년에 아버지 뒤를 이어 학교장에 부임한 시모어 세인트 쟌은 이후 26년간을 재직하며 쵸트 스쿨을 미국내 명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교과 과목을 더욱 심도 있게 짜 놓았고 기숙사 시설의 확충 및 학교 본관과 교실 시설을 확충하였습니다.
1971년 로즈메리 스쿨이 다시 월링포드로 옮기게 되면서 1973년도에 다트머스대학의 학장이었던 찰스 데이가 고용되어 그 당시 학생수가 1000명에 이르는 두 학교가 하나로 합병(合倂)이 되었습니다.
1991년에 새로 교장으로 부임한 현 교장인 에드워드 샤나한 역시 다트머스 대학의 학장을 지낸 사람으로 부임 후 학교 이사회와 의논하여 학생 수를 850명으로 제한하였으며 90년대 후반 5개년 1억 달러 모금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90년대 말에는 학교의 모금액이 1억3500만불에 달하는 학교가 되었으며 2008년 6월말 현재 이 학교의 총 자산은 2억6100만 달러에 이릅니다.
현재 이 학교에는 총 84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또 10명은 해외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총 850명의 학생들 중에 610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240명은 학교 주위에 거주하는 통학생들입니다. 학생들은 41개의 다른 주에서 온 학생과 33개의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공부합니다.
쵸트 로즈메리 홀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240여개의 학과목과 25개에 달하는 AP 클래스를 가르치고 있으며 항상 새로움을 시도하고 새 것을 창조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는 학교의 이미지를 학생들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특색있는 필수 학과라면 30시간을 반드시 이수해야하는 커뮤니티 서비스 과목입니다. 현재 109명의 정규직 교사와 10명의 비 정규직 교사들 중 70 퍼센트 이상이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학과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48명의 직원이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쵸트 로즈메리 스쿨에서도 33%의 학생들이 70% 이상의 학비를 장학금으로 수여 받는데 그 액수가 무려 750만 달러에 상당합니다. 지난 2008년도의 신입생 지원자의 수는 1,649명 이었으며 이 중 265명이 입학을 하였습니다. 2009년도에도 신입생 모집에 1600여명이 원서를 냈고 이 중 260명이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이 학교가 현재까지 배출해 낸 졸업생들은 16,000명에 달하며 오늘도 쵸트 로즈메리 스쿨은 미래 전 세계를 움직일 지도자들을 배출해내기 위하여 열심히 특별한 학생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 학교의 대학 진학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 4년간 하버드 25명, 예일 30명, 브라운과 코넬이 각각 29명씩, 콜럼비아 21명, 유펜 20명을 기록하며 특히 죠지타운 44명과 NYU 26명 등 매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많은 학생들을 합격시키고 있습니다.
쵸트 로즈메리 홀
Choate Rosemary Hall
333 Christian Street
Wallingford, Connecticut 06492
Phone: 203-697-2239 어드미션 오피스
스테파니 장 진학지도전문가 totaleducatio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