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百年前) 오늘<4>위대한 삼일독립운동
by 뉴스로 | 24.03.01 18:12

'옛 회포를 자아내는 태화관'


 

삼일절(三一節) 105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31(음력 129일 토요일)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에 항거해 전 민족이 일어난 3.1 운동(三一運動)은 이후 수 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봉기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자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civil disobedience)을 전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 인원은 약 200여 만 명에 달한다. 비폭력 시민운동이었음에도 일제의 잔혹한 진압으로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고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한다.

 

삼일운동을 계기로 시위가 각종 후원회 및 시민단체가 들불처럼 결성되었고 민족 교육기관,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 등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등의 무장 레지스탕스, 독립군이 탄생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 한국의 모체(母體)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3월 1일 거사를 앞둔 며칠 전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이라는 빈관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5년후인 192431일 동아일보는 옛 회포를 자아내는 태화관이라는 사진뉴스와 함께 <작일(昨日) · 금일(今日) · 명일(明日) - 용기와 정의와 세력의 필요>라는 2단 기사를 실었다.


일제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완곡한 제목에 은유적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으나 이 땅의 민중이 뜨거운 용기와 의지를 갖고 세력을 기르자는 사자후(獅子吼)’가 행간 곳곳에서 느껴진다. 또다른 지면엔 경성(서울) 시내 조선학생과 일본학생의 숫자를 비교하며 차별 문제를 거론해 시선을 끌었다. 고심 끝에 시도한 다분히 의도적인 편집이었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가 제공하는 백년전 신문기사를 소개한다.

 

작일(昨日) · 금일(今日) · 명일(明日) (1924.03.01.) 동아일보

용기와 정의와 세력의 필요



 


31! 해마다 오는 31일이 또 왔다! 새는 노래하고 초목에는 새싹이 나오려 한다. 세상에는 평화스런 봄이 오려 하나 조선의 천지에는 아직도 봄이 오지 아니하였다.

 

해마다 오는 이 날임에 이 날을 맞는 사람에게 특별한 감상이 있을 까닭은 없다. 그러나 우리 조선 사람 은 이 날을 맞을 때마다 한 없는 감개가 가슴을 차지하게 된다.

 

31! 6년 전 이 날에는 우리의 형제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하여 다 같은 군호(軍號)로 소리친 날이다. 그 소리는 마침내 졸음에 들었던 조선을 깨게 하였고 세계 인류의 가슴에 적지 아니한 파동을 주었다.

 

세월이 쉽다. 벌써 이 날이 있은 지가 오늘로써 다섯 돌을 맞게 되었구나! 그동안에 우리의 아기는 얼마나 자랐는가. 외감(外感)와 내종(內腫)에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가. 지금 이날에 우리의 아기는 어떠한 형편에 있는가.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또 현재를 살펴볼 용기도 없다. 오직 우리는 장래를 위하여 이날 이때에 그윽이 생각함이 있어야 될 줄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명일(明日)을 위하여 어제와 오늘의 품에서 무엇을 찾아내야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될 것이다. 병마가 침략하더라도 기한(飢寒)이 도골(到骨)할 지라도 끝까지 굳센 용기를 가져야 될 것이요, 둘째 우리는 의()를 위하여 이()를 죽이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요 셋째 우리는 용기와 정의로써 큰 세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5년 후의 이날을 맞을 때에는 우리에게도 참된 봄의 즐거움이 있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다.

 

 

경성 시내의 학생 수 (1924.03.01.)

거의 5만 명

조선 학생은 21,000여 명

일본 학생은 13,000여 명

 



공부하는 학생이 경성부 내에 얼마나 될꼬. 신학기가 가까우면 길거리가 더욱 복잡하고 하기방학만 되면 종로 판이 바짝 마르는 것을 보아도 학생이 얼마나 있는 지를 대강 짐작할 터인데, 이제 재작년 말 현재로 분명한 숫자를 따져 보면

조선 사람은

공립보통학교 : 6,800여 명

사립보통학교 : 4,400여 명

중등학교 : 9,700여 명

합계 : 21,000여 명

일본 사람은

공립소학교 : 9,700여 명

공립고등여학교 : 1,300여 명

중등학교 : 2,100여 명

합계 : 13,200여 명

으로 모두 34,200여 명이나 되는데, 이에 중등 정도 이상의 학생과 관립학교 학생 기타 잡종 학교의 학생을 합하면 50,000명을 내리지 아니 하리라고 당국자 모씨(某氏)는 말하더라.

 

조선 학생이 교실, 운동장의 협착(狹窄)을 좋아하는가

그 이면이 비참하다

별항과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 각 학교의 설비가 조선인 측과 일본인 측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 지는 너무 복잡하여 일일이 소개할 수 없으나, 그중 가장 재미있는 한 두가지의 전례를 들건대

일본 소학교 아동 수효를 전 인구에 비교하면 100명에 대하여 13명이고

조선 보통학교 아동 수효를 전 인구에 비교하면 100명에 대하여 4명인 즉,

원래 아동의 수효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학교가 부족해서 학교에 들어간 아동이 적은 까닭이며

일본 중학생은 1명이 차지한 학교 기지가 11평 반이고 교실이 2평 남짓하되

조선 중학생은 1명이 차지한 학교 기지가 겨우 6평이고 교실이 1평 반인 즉,

조선 학생은 운동장도 좁고 교실도 좁은 것을 즐기는 까닭에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넓은 기지에 완전한 학교를 세워 주지 아니한 까닭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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