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18>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1980년대초까지 이맘때면 ‘창경원 벚꽃놀이’가 장안의 화제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태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낮부터 밤까지 즐기는 것이 연례행사 였던 것이다.
아다시피 벚꽃, 사쿠라는 일본의 국화(國花)다. 그런데 어쩌다 창경원 벚꽃놀이가 유명해졌을까. 창경궁(昌慶宮)을 창경원(昌慶苑)으로 둔갑시킨 일제의 농간때문이었다.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을 때에 창덕궁 옆인 현재 자리에 별궁을 지어 거처로 삼은 곳이다. 원래 수강궁(壽康宮)이었는데 성종 15년(1484)에 할머니 자성대왕대비 윤씨, 어머니 인수왕대비 한씨, 숙모 인혜왕대비 한씨를 모시기 위해 증축 확장하면서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꿨다.
원조 창경궁은 임진왜란(1592~1599) 때 왜군의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고 광해군 7년(1615년) 4월에 주요 건물들을 재건해 이듬해 11월 마무리됐다. 인조 때와 순조 때에 큰 화재가 있었지만 창경궁이 치명적으로 훼손된 때는 일제 강점기다.
1909년 일제는 강제로 창경궁 내부 궁문, 담장, 전각들을 헐고, 일본식 건물을 세워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드는 등 유원지로 탈바꿈시켰다. 권농장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춘당지라 불렀으며 정자를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뒤쪽에는 식물관을 짓고, 동쪽에는 배양당을 지었다. 통명전 뒤 언덕에는 일본식 건물을 세워 박물관 본관으로 삼았다. 남아있는 건물들도 개조하여 박물관의 진열실로 만들었다.
1911년에는 자경전터에 2층짜리 박물관을 세우고 창경궁을 ‘昌慶苑’으로 바꾸어 격하시켰다. 1915년에는 문정전 남서쪽 언덕 위에 장서각을 건립하고, 1922년에는 벚꽃을 수천 그루 심어 벚꽃숲을 만드는가 하면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했다. 조선의 왕궁이 동물원으로 둔갑하고 사람들이 술판을 벌이는 한낱 유원지가 되버린 것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창경원은 국민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이기도 했다. 당시 보기 힘든 동물들도 있고 회전목마 그네 등 놀이시설도 있어서 서울을 대표하는 인기 유원지로 통했다. 1971년 벚꽃이 한창인 4월 주말엔 하루 25만명이나 입장하는 등 한달간 150만명이 들어올만큼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렸을 땐 창경원의 역사를 몰랐지만 훗날 왕궁을 일본놈들이 동물원 유원지로 만들었다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일제가 물러갔으면 동물원부터 옮겨야 할텐데 곤궁한 60년대도 아니고 1984년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왕궁이 복원될 때까지 운영했다는 것은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창경원 밤벚꽃놀이가 시작된 것은 1924년이다. 일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그해 3월 19일 ‘장차 불야성(不夜城) 화(化)할 창경원의 야경(夜景)’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며 일제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일제가 소위 문화통치를 앞세워 놀고 먹는데 정신 팔리도록 민중을 우매하게 만드는데 창경원을 활용한 셈이다. 창경원의 벚나무 2천그루는 과천의 어린이대공원과 여의도로 옮겨져 윤중로 일대 벚꽃놀이가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여의도 벚나무들이 올해부터 제주왕벚나무로 교체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본래 벚나무도 제주 왕벚나무에서 시작됐으니 원조는 우리인 셈이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가 제공하는 기사와 번역본을 소개한다.
☯ 장차 불야성(不夜城) 화(化)할 창경원의 야경(夜景) (1924.03.19.) 매일신보
앵화(櫻花)의 만개(滿開)를 따라 앵화의 가지마다 등불을 달고
이곳 저곳에 촛수 높은 전등을 켜

금년에는 다른 해에 비하여 퍽 따뜻한 편으로 『사구라』 꽃도 작년보다 5~6일 동안이나 일찍 필 듯하므로, 창경원에서는 이미 『사구라』나무를 더 심는 등 다른 꽃나무들까지도 다독이며 다듬으려 여러 사람이 일시에 일을 시작하였다. 『사구라』꽃이 필 때가 되면 조선 각지 더구나 궁벽(窮僻)한 지방 사람들까지 일부러 꽃구경을 오는 형편이므로, 금년에는 좀 다른 방책을 써서 꽃 구경꾼에게 한층 더 흥미와 편리의 만족을 도모하기로 하여 이왕(已往)과 같이 낮에 한하여서만 꽃을 구경케 하지 않고 밤에도 역시 『사구라』의 아름다움을 취하도록 보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하여 장원실(掌苑室)에서는 말하되, “창경원으로서는 개원 이후 처음으로 시험하는 일인 까닭에 예기(豫期)의 성적을 얻게 될는지 어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꽃 구경하는 손님의 기대에 배반되는 빈약한 설비야 어찌 할 수 있습니까. 계획이야 계획 그대로 휴게소, 끽다소(喫茶所)의 증설과 원내 수 백의 『사구라』 나무와 사람 다니는 길 양편의 『사구라』나무에 등불을 나뭇가지의 사이에 달아놓고 또 낮을 능히 업신여길 만한 촉수의 큰 전등을 곳곳에 달아 흡사 불야성을 만들 계획이외다. 그리고 꽃 구경 할 때는 4월 20일부터 일주일 내외 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계획이 무슨 영리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므로 입장료는 낮과 같이 그대로 받을 작정이외다.” 한다. 그런데 이외에 창경원 식물원에서 재배하고 있는 꽃분의 몇 가지는 『스탐푸』를 찍어서 희망하는 사람에게 분배하기로 한다더라.
☯ 일본 여공(女工)의 불임증(不姙症) (1924.03.19.) 동아일보
조선 여직공들은 과연 어떠한가

◊ 일본 신문지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 장야현(長野縣)에서는 『제사(製絲) 직공에게 장가들지 말라』는 말이 유행하여 큰 문제가 생겼다는데, 그 내용을 알아보면 제사(製絲)하는 여직공들은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작업대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작업대와 기타 공장의 설비가 아주 불량하여, 필경은 심장, 폐, 자궁 등에 병을 얻게 되므로 따라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이 되므로 이와 같은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한다.
◊ 이 사실을 알은 장야현 당국에서는 『이는 인도(人道)상에 중대한 문제』라 하여 급속히 공장 개량을 단행하는 동시에 엄중한 감독을 하여 그와 같은 폐단이 없도록 하려 한다고 보도하였다.
◊ 조선과 같이 공업이 발달되지 못한 곳에 있어서는 이와같은 사실이 그다지 중대히 들리지 아니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공업이 발달되지 못하고 공장 조직이 불완전할수록 직공의 학대와 폐해는 더 심할 것이다.
◊ 가령 경성으로 말하더라도 연초 공장이나 정미소나 고무 공장 같은 곳에서는 다수한 여자를 직공으로 사용한다. 현재 이 여러 가지 공장에서 사용하는 직공들은 과연 어떠한 대우를 받으며 어떠한 고통을 당하며 어떠한 무서운 현상이 숨겨 있는가.
◊ 우리는 이 작은 난(欄)에 장황한 말을 기록할 수가 없음을 안다. 오직 『품삭』을 받고 직공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자본주나 혹은 관청에서 아무리 『후의(厚意)』를 쓴다 할지라도 그들은 청천백일(靑天白日)을 자유로 대할 기회가 없음과 같이, 소위 『인도(人道)상에 중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백골(白骨)의 발호(跋扈) (1924.03.20.) 동아일보
시급한 새 도덕의 건설

◇ 수 년래로 경성 시내의 골목 골목에는 『무슨 파(派), 무슨 씨(氏) 대동보소(大同譜所)라 하는 문패가 많이 붙게 되었다. 이것도 『간판 유행』의 한 가지 풍조로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 민족으로는 망하고 개인으로는 죽어도 가문(家門)으로는 죽지 말자는 그들의 운동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이며, 사회를 위하여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 가장(家長)은 갖고의 모든 행위를 지배하고 아랫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在下者有口無言) 밑구녕이 찍어지게 가난해도 『사당(祠堂)』은 모시고 다녀야 하던 옛날의 가족주의는 이제 운명할 날이 멀지 아니 하였으므로 마지막으로 큰 한숨을 쉬는 꼴인가.
◇ 소위 『대동보(大同譜)』 운동이라 함은 좋게 말하면 뼈(骨)에 대한 공사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요 나쁘게 말하면 몇몇 건달들의 밥벌이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뼈에 대한 공사라 하면 귀신들끼리나 하라고 할 것이요 밥벌이를 위한 일이라 하면 차라리 그들의 정경(情景)을 불상히 여기기나 할 것이다.
◇ 뼈만 위하던 옛 도덕은 이제 헛기침을 한다. 살기를 위하고 사람을 위하는 새 도덕은 젊은이의 손으로 시급히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나 아들이나 손자나 모두 한결같이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가며 재미있게 살아보아야 할 것이다.
◇ 그리하여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가정(家庭)』이라는 옥(獄)에서 뛰어나와 마음대로 세상에서 뛰놀게 하자. 이것이 우리의 가장 급한 일의 한 가지이다.
☯ 학창(學窓)에서 사회에 (1924.03.23.) 동아일보
졸업생 제군에게 몇 마디

◊ 근일은 경향을 물론하고 각 학교의 졸업식이 연일하여 있고 각 학교에서 졸업생이 쏟아져 나온다. 황막한 조선 사회에 순실(淳實)하고 어린 새 일꾼이 나온다.
◊ 그중에는 상급 학교로 입학하는 학생도 있을 터이요 도는 자기의 학문을 더욱 닦기 위하여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외나 상급 학교로 가는 사람은 자기의 학문을 더욱 연찬(硏鑽)하기에 힘쓰려니와 사회로 나오는 여러 졸업생에게 몇 마디 말을 하리라.
◊ 학교에서 책상을 안고 혹은 강단의 선생의 말을 듣는 동안은 자기가 일하여 나갈 사회에 다대한 희망을 부쳤으며 또는 여러 가지 동경도 많이 하였으리라.
◊ 그러나 급기야 졸업장을 받고 나오는 사회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공상하던 바와 같이 재미있는 곳이 아니다. 더욱 조선 사회는 어깨에 눌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가슴을 에이는 비애가 있을 뿐이다.
◊ 이와 같이 만사가 어려운 사회에 제군이 학창(學窓)에서 얻는 바 지식과 함께 졸업장을 받아가지고 나올 때에 마치 무슨 단꿈을 꾸다가 싱거운 현실을 대하는 것과 같은 쓸쓸함을 느끼리라.
◊ 그러나 경애하는 졸업생 제군이여! 우리 조선 청년은 누구든지 이 조선 사람이라는 부모를 두고 조선이라는 땅을 밝고 나서는 그날부터 고통과 비애를 떠메고 나온 것이라. 특히 졸업생만이 더 고통이요 더 쓰린 것이 무엇이냐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 그러나 지금 우리 조선 동포의 대부분은 죽어도 죽는 줄을 모르고 죽는 - 천진하다면 천진하다고 할 – 순실(淳實)한 백성들이다.
◊ 이 가련한 백성들을 지도할 자가 누구이뇨. 우리의 부로(父老)이냐? 부로는 이미 늙었다. 우리의 선배이냐? 선배라고 할 만한 선배도 없지 아니한가? 이 지도할 사람없는 어린 양 같은 백성을 지도할 자가 누구뇨 = 오직 학생 모자를 벗고 나오는 새 청년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 괴로운 말을 여러분 앞에 내어 놓는다. 남녀 졸업생 제군이여. 이 불쌍한 조선 백성은 졸업장을 들고 나오는 제군을 기다리고 있다.
☯ 부지런하자 (1924.03.24.) 동아일보
시간을 어김은 큰 죄악이다

◊ 일전 모 회의에는 정각에 사람이 모이지 못하여 40분이나 늦게 개회를 하였는데, 정각 후 한 시간 반이나 된 후에 어슬렁어슬렁 출석한 회원도 있었다 한다. 폐회 후에 술잔이라도 있을 줄 알고 늦게 부지런을 내었던가. 그 회의 명목은 『경성부 협의회』라고
◊ 사람은 낳기도 시간에서 나고 살기도 시간에서 살고 죽기도 시간에서 죽는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지 못하고 모든 동물이 공기를 떠나서 살 수 없음과 같이 사람은 아무리 해도 시간을 떠나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은 곧 시간』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 사사로이 개인의 일을 위하여 시간을 어기면 그만치 개인의 손해요 공사(公私)로 시간을 어기면 그만치 사회의 손해이다. 이러한 말은 너무 평범한 말이라 여러 가지로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와 세계적으로 큰 발명가인 『에듸손』씨는 80살이 넘은 오늘날까지 하루에 4시간 밖에 자지 아니 한다 한다. 그가 얼마나 시간을 아낌을 알 것이 아닌가.
◊ 조선 사람은 가난하다. 무식하다. 남과 같이 살아가려면 남보다 일을 많이 하여야 할 것은 명백한 일이다. 일을 많이 하려면 시간을 아껴야 하고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지런』이라는 좋은 습관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곧 개인으로는 장생술(長生術)의 한 가지요 사회로는 그 사회가 살았다 하는 표증(表證)이 될 것이다.
☯ 미신(迷信)으로 밥 먹는 자 경기도 내에 134명 (1924.03.25.) 동아일보

우리 조선 사회에는 여러 가지 미신이 있어서 사회로나 가정으로나 많은 폐단이 있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러한 미신은 무엇보다도 『점쟁이』니 『무당』이니 하는 매복자(賣卜者)들이 그같은 미신을 조장하여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것은 다툴 수 없는 사실이라한 유식자가 개탄하는 바, 경기도 관내에만 그 수효가 실로 적지 아니하여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에서 조산한 바에 의하면, 무당이나 점쟁이 종류로 그 수효가 134명으로 자세한 통계는 다음과 같은데 이외에 숨은 무슨 산신(山神)이 내렸느니 관공(關公)이 내렸느니, 전내(殿內)가 내렸느니 하는 것도 많겠더라.
경찰 취체보다 유지(有志) 활동이 필요
양주군 관내가 제일 많다

이러한 매복자(賣卜者)들은 무식한 사람의 청구에 의하여 점(占)이나 굿이나 기타 여러 가지 기도(祈禱)를 해주고 한 번에 조선 사람은 1원 이상 3원까지 받으며, 일본 사람은 5원 이상 10원까지 받는다는데, 조선 매복자들은 대개 판수가 많고 그중에는 이전에 감리(監理)나 군수(郡守)까지 지낸 사람이 있으며, 일본 매복자들은 대개 학식있는 사람이 많고 그중에는 체신성 기사(技師)까지 다닌 사람이 있는데, 일본 사람이나 조선 사람을 물론하고 그들이 매복자가 도기 까지의 이력(履歷)에는 여러 가지 기괴망칙한 말이 많이 있어서 혹은 계룡산에 가서 3일 3야(夜)를 기도하다가 신령을 만나 보고 기도술을 배워 매복자가 되었다는 엉터리 없는 말도 잇고, 혹은 일광(日光)폭포에 가서 물 구경을 하다가 그 폭포에서 솟아오르는 용(龍)의 눈을 보고 돌연히 기도술을 배워 매복자가 되었다는 허무맹랑한 말이 많다. 이러한 매복자들은 모두 사회에 적지 아니한 해독을 끼치므로 경찰서에서도 상당히 취체할 터이라, 이러한 것은 경찰의 취체보다도 그곳 청년회나 기타 단체의 활동으로 그러한 미신을 방지함이 필요하다 하며 더욱이 경기도 관내에 대하여 인천(仁川)같은 곳에는 별로 매복자가 없으나 양주(楊州) 같은 곳에는 작은 고을에 29명이나 있는 즉 일반의 주의는 물론이요 그곳 유지들의 할동으로 그러한 미신을 방지함이 좋겠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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