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프랑스식민지(植民地) 시대를 끝내고 크메르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노로돔왕조의 위대한 통치자(統治者) 시하누크의 시대였던 1960년대 캄보디아 프놈펜의 동영상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습니다. 흑백 필름이었는데요. 웅장한 황궁(皇宮)을 중심으로 프놈펜은 잘 가꾸어진 모습이었습니다. 넓은 도로에 캄보디아 전통(傳統) 가옥(家屋)과 서구의 슬라브식 건축물(建築物)들이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기 위해서 건설하였다고 하는 올림픽스타디움과 드넓은 캠퍼스에 많은 학생들의 밝은 모습이 가득하였던 왕립프놈펜대학교의 역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당시의 한국보다 부유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변(政變), 열강(列强)들의 다툼, 공산화, 학살(虐殺), 내전(內戰), 독재(獨裁)…



뚜어슬랭 학살 박물관



킬링필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失踪者)들을 포함하여 200만명이 넘는 캄보디아인들은 채 3년도 되지 않는 동안, 동족(同族)인 크메르루즈 정권의 손에 의해 절대 공포(恐怖) 속에 스러져가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캄보디아에는,
여성(女性)들이 많습니다.
한 세대(世代)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지식인(知識人)이 없습니다.
언젠가 캄보디아 젊은이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예로부터 캄보디아는 하늘의 축복(祝福)을 받은 나라여서, 기름진 땅에는 씨를 뿌리면 곡식이 자라고, 톤레삽과 메콩강에는 어망을 던지면 물고기들이 가득 담겨 올라오고, 길가에는 온갖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손만 뻗으면 그만이었고, 그래서 캄보디아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는데, 폴 포트 시절에는 굶어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굶겨서 죽었다고.

도심 변두리 젊은이들


젊은이들의 꿈은 모토(오토바이)를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다리면 만남이 이루어진다는데...

빈민가




시장 앞 거리 식당
캄보디아사람들은 집에서 밥을 잘 해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집 근처 쌀국수집, 점심은 일하는 부근 식당이나 시장에서 주로 밥을 먹습니다










강변에서

수출 컨테이너



노점상들

프놈펜에는 오래된 건물의 개축공사가 많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용잡부

가게 경비원

황궁 앞 톤레삽 유람선, 선장도 가족들도 배에서 살아 갑니다.
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