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5차방북과 코로나19
by 로창현 | 20.09.01 22:07

 

 

2020년 경자년(庚子年)3분의 2가 흘렀습니다. 지난 연말 중국 우한에서 집단 폐렴이 처음 보도될 때만 해도 이렇게 세계를 대혼돈(大混沌)속에 빠뜨릴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코로나19’로 명명된 이 괴질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지금 이순간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고통과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일종의 특수(特需)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활의 불편은 모두가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코로나19로 올해의 큰 계획들이 모두 틀어져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지난해 12315차 방북을 위해 중국 북경에 갔다가 비자가 하루 늦게 나오는바람에 방북이 좌절된 것이 일종의 불길한 전조(前兆)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2003년 미국에 온 이래 주변에서 북녘땅을 오기는 시민권자 동포들을 보고 그들의 방북기를 취재하기도 했지만 제가 직접 가는 것은 솔직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뉴스로 필진 강명구 선생이 유라시아 대륙횡단에 도전하면서 그가 북녘 땅을 밟는다면 평양에서 환영하리라는 결심을 하고 2018년초부터 방북할 수 있는 방법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자유로운 방북은 시민권자들만 가능하고 저같은 영주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통일부 허가를 받아야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북에서 온 초청장 등 특별한 서류가 없는 한 방북허가를 받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여기저기 알아보며 답답한 시간을 보내던 그해 8LA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정연진 AOK 상임대표와 첫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연진 대표는 뜻밖에 "평양에 들어가 강명구선생 환영을 하면 어떻겠냐"고 묻는게 아닙니까? '불감청 고소원'이니 반가웠습니다. "안그래도 방북을 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더니 영주권자도 방북할 수 있어요하는게 아닌가요.

 

얘기인즉 과거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의 물꼬를 튼 7.7선언을 통해 해외 영주권자도 통일부에 사전 신고만 하고 방북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미국 영주권을 갖게 된 2005년말부터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방북할 수 있었던 것이죠.

 

기자로서 북녘 산하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걸 까맣게 몰랐던게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희망이 샘솟았습니다. 정연진 대표 역시 영주권자였고 이미 두차례 방북 경험을 갖고 있더군요.

 

아다시피 미국 정부는 웜비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시민권자의 방북을 금지한 상태라 미국에서 북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같은 소수의 영주권자만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강명구선생은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丹東)에 도착했지만 끝내 방북허가를 받지 못했고 우리도 방북비자가 마지막 순간 거절되는 등 난관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방북 목적을 바꾸고 기간도 변경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첫 방북을 201811월 할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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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방북이 불과 1년사이에 네차레 이어졌습니다. 방북을 자주 한 것은 첫 방북의 경험이 아주 신선했고 북의 변화상이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기때문이었습니다. 우리와 동행한 안내(북에선 안내원을 이렇게 부릅니다)요즘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는 것을 듣고 그렇다면 계절에 한번은 취재를 해야 북의 변화를 알 수 있겠다는 기자로서의 의욕이 동했습니다. 또한 미국시민들이 여전히 북녘여행이 금지된 상황에서 저같은 사람이라도 자주 가서 북녘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야겠다는 의무감도 있었습니다.

 

2019104차방북이후 두달여만인 12월 31일 5차방북은 그러나 북경의 조선()영사관에서 무슨 연유에선지 비자가 하루 늦게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자를 다음날 받으면 평양으로 연결하는 고려항공이 나흘뒤에나 있는데다가 제가 중국엔 트랜짓(통과)비자만 받아서 3일이상 체류가 불가능했거든요.

 

새해 카운트다운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하리라는 계획은 아쉽게 좌절됐지만 설날에 맞춰 125일경 다시 들어갈 요량이었는데 그만 코로나19가 터져버린 것입니다. 중국에서 확진자들이 크게 늘자 북 당국은 123일을 기해 국경을 전면봉쇄 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연결되는 고려항공 운항도 전면 중단되었지요.

 

북의 철통같은 봉쇄와 외국인 등 방문자에 대한 격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는 당시 평양에 체류하던 조선신보(재일) 로금순기자가 평양의 한 호텔에 무려 40일간 격리됐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만약 제가 봉쇄 직전 평양에 들어갔다면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기자로서 아쉽기도 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에서 단 한명의 확진자도 안나왔다는 공식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북의 철저한 위생방역 시스템을 고려할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LA의 통일운동가 최재영목사에 따르면 북에선 메르스 사태 등 과거에도 외국 방문후 들어오는 자국민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3주간 격리했고 외국에 장기간 체류후 입국할때는 혈액검사를 의무화 한다고 합니다.

 

국경봉쇄이후 북에선 일체의 감기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의심자로 분류하고 검사와 자가격리 조치를 취했습니다. 특히 평양시내 외교단지 등 외국인들 거주지는 방역 소독 작업을 철저히 하는 한편으로 거주민들의 외출을 수주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남쪽에서 날아오는 전단에도 코로나 균이 묻어있을 수 있다며 경계를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일부 극우탈북세력이 음란 전단과 가짜 1달러를 넣은 풍선을 날려보냈다니 어처구니 없습니다.

 

북에선 장기간의 제재로 인해 의약품 수입이 제대로 안돼 전통 민간약재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과거 항암치료제로 명성 높았던 장명을 비롯해, 최근의 금당2 주사제 등은 한결같이 자가면역력을 높이는 천연약재여서 코로나19와 같은 괴질을 막는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북녘 주민들이 다른 세계인들에 비해 저항력이 높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언제 또다시 방북을 할수 있을지 가늠하기가어렵습니다. 아마 제가 못간 사이에도 북에선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겠지요..불과 1년간의 1~4차 방북에서도 변화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으니까요.

 

북은 지금 기왕의 가혹한 경제제재와 코로나19 그리고 여름 잇단 홍수와 태풍 피해로 정말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북녘 주민들은 이겨낼 것입니다. 북의 잘 알려진 구호중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90년대 많은 아사자들이 속출한 고난의 행군시기에 풀뿌리로 죽을 해먹고 석탄가루로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 혹독한 고난의 행군도 이겨냈는데 이런 어려움쯤은 문제 없다구요. 이런 때 우리 남북이 민족 공조의 자세로 힘을 합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건 애오라지 "자주(自主) 정신"입니다. 우리가 한머리땅의 민족 당사자인데 누가 누구 허락을 받으며 외세의 눈치를 본다 말입니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자주입니다. 자주로 평화통일 이루어 자자손손 위대한 Corea를 물려줍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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