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母曲 어머니를 그리며
by 노창현 | 16.05.07 15:35

 

“엄마를 부르면 일단 살것 같다,

 

저에게 기쁜일이 생기면 세상에는

온통 엄마의 미소로 가득합니다.

 

저에게는 슬픈 일이 생기면 세상에는

온통 엄마의 눈물로 가득합니다.

 

이세상을 떠났어도 이세상은

온통 엄마로 가득합니다.

 

-‘세상에 가득한 엄마’ 중에서

이해인 수녀가 병상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엮은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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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라고 하지요.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것도 1겁(劫)이라는 전생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1겁이라는 시간은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요.

 

40리(15.68km)에 달하는 돌산을 백년마다 한 번씩 천으로 쓸어 그 돌산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 혹은 사방 10리가 되는 바위가 천년에 한 번씩 지상에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에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의 한량없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부로 만나려면 전생에 8000겁의 인연이 있어야 하고 형제는 9000겁의 시간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은 무려 1만겁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는 인연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준 부모만큼 소중한 인연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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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태어나던 그 순간을 생생히 적은 어머니의 일기(日記)를 먼 훗날 장성한 자식이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빛바랜 일기에 활자(活字)로 살아 숨쉬는 어머니의 사랑과 노고를 보는 자식의 눈가는 촉촉이 이슬로 젖어듭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저의 탄생을 어제 일처럼 회상할 수 있는 어머니의 일기를 볼 때마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에 사로잡힙니다. 어머니는 팔십평생 일기를 쓰셨습니다. 어머니의 주변에 항상 따라다니는 것은 펜과 일기장이었지요.

 

알츠하이머가 시작된 수년전부터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기억의 편린(片鱗)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간나는대로 일기를 쓰셨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수중의 수첩과 메모지, 편지봉투, 광고전단, 심지어 냅킨과 두루마리 휴지에까지도 그때그때 일들을 기록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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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어머니는 일기만을 쓰신게 아닙니다. 당신이 접하는 모든 종류의 신문과 주간지 월간지 잡지 등의 눈길끄는 기사와 정보들을 모은 스크랩북만 물경(勿驚) 일백권이 넘습니다. 어머니가 모은 데이타의 양이 얼마나 많고 대단했던지 그 자료집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했고 대학교수나 도서관 사서, 신문사 조사부기자를 하시지 않은게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딸만 아홉인 집안의 둘째로 명문 대전여고(대동고녀)를 졸업하고도 해방후 격동기에 대학진학을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을까요. 어머니는 늘 공부를 하셨고 독서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50대와 60대에는 10년 넘게 영어 등 EBS의 아침강좌를 들었고 70대에는 경로회관 복지회관 등에서 하는 한문과 서예, 영어, 음악, 컴퓨터 강좌 등을 섭렵(涉獵)했습니다.

 

그렇다고 책상머리만을 지킨 것은 아닙니다. 운동에도 타고난 소질이 있던만큼 왕성한 활동력으로 70년대초 여성회관에서 꽃꽂이 사범 자격을 이수(履修)했는가하면 80년대에는 재경대전여고 동창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에 선명한 것은 환갑을 지난 89년 어머니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기뻐하던 모습입니다. 제가 88년 신문기자가 된 이래 지금까지 숱한 화제의 인물들을 취재했지만 기실 당신이야말로 그런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한동안 문학에 심취하여 시인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1951년도 소인(消印)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그리며 띄운 편지였습니다. 앞뒤로 빼곡이 쓴 세장의 편지엔 신혼의 어머니가 전쟁의 와중에 시댁 어른을 모시면서 겪는 어려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나의 소망(所望)의 그대에게’…. 편지의 첫 문구를 보는 순간 저는 너무도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에 탄복했습니다. 오래전 미국에 이주하신 일곱째 이모님은 언젠가 “둘째언니의 소설같은 긴 편지를 읽으며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외람되게도 저의 인문학적 소양과 기자적 문필은 온전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DNA의 후광(後光)입니다. 어머니는 기자로 사반세기를 살아온 큰아들의 영원한 팬이요, 한결같은 지지자였습니다. 제가 쓴 모든 기사들을 스크랩하며 읽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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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견을 자랑하셨고 때로는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서 앞날을 예견하는 통찰력(洞察力)으로 놀라게도 했습니다. 제가 스포츠서울 사회부장이던 2001년 1월 조지 W. 부시가 미국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네오콘과 합세해 강경한 대 중동정책과 발언을 쏟아놓자 어머니는 “얘~ 저 부시대통령 왜 저러냐? 자꾸 자극하면 안되는데. 무슨 일 날까 무섭다”고 하시더군요. 그로부터 몇 달 후 9.11테러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테러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들을 향한 무한신뢰야말로 기자라는 직분을 대과없이 수행한 힘의 원천(源泉)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난해 6월 ‘글로벌 웹진’ 뉴스로(www.newsroh.com)를 창간할 수 있었고 발행인으로 다름아닌 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쓰신 허다한 일기와 기록물 가운데 오늘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은 2006년 3월 31일부터 2010년 5월 23일까지 쓰신 일기입니다. 굳이 이 시기의 기록을 간추린 것은 79세에 미국에 사는 큰아들네를 방문하여 2년 가까이 사시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국으로 옮긴 노후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드리고 싶었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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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어머니의 일기는 알츠하이머 발병으로 스러져가는 기억들을 퍼즐맞추듯 혼신(渾身)의 노력으로 맞춰나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그 어떤 문학가의 소설보다 제게는 감동을 주는 역작(力作)입니다.

 

어머니의 일기를 컴퓨터로 옮기는 내내 어머니의 풍부한 감성과 노년의 외로움, 자손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 웃고 울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기장은 매일매일의 신문과 책자, TV, 동화와 광고물 등의 내용이나 필체를 흉내내고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근자의 일기엔 지극히 짧은 내용과 매일의 식사 내용이 되풀이되지만 정작 일기장엔 깜짝 놀랄 정도의 정성 가득한 글과 글씨, 그림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워낙 방대한 양이어서 어머니의 일기만을 추려야 했습니다. 국한문 혼용체로 된 어머니의 일기는 육필(肉筆)의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원문을 그대로 옮겼고 되풀이되는 단어와 맞춤법, 문맥의 오류(誤謬)도 거의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많은 한자를 일부 생략하고 어머니의 쇠잔한 기억으로 미처 채우지 못한 빈칸은 괄호 표시와 해당 단어를 표기했습니다. <1장>과 <3장>은 한글을 먼저 넣고 괄호와 한자를 채웠고 <2장>은 원문에 가깝게 한자를 먼저 살리고 한글을 이어붙였습니다.

 

더불어 본문에 들어간 관련 사진들을 통해 당신께서 어떠한 생활을 하셨으며 일기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어머니는 일기에서 부처님 전에 삼남매와 손자손녀들에 대한 기도를 쉼없이 하셨지만 인연 맺은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와 축원을 빠트리지 않는 보살행(菩薩行)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혹여 일기 내용 중 본의아니게 불편함을 드린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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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격려(激勵)를 아끼지 않고 표지 그림과 추천의 글까지 기꺼이 보내주신 뉴욕의 누드크로키 작가 김치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치김 님은 어머니가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아낌없는 친절과 애정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1년 가까이 무료치료해주신 박동현 한의사님을 비롯,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지금 이 순간 사랑방 너싱홈에서 헌신하시는 관계자 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어머님이 평생 사랑하셨고 그리워하시는 아버님(世堂 盧璋煥)의 영전에 이 책을 올리며 저희 삼남매 큰 절로 헤아릴 수 없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어머님 홍성인 여사의 84회 생신을 기념하며

불기 2555년(2011년) 10월 15일

큰아들 노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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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5년전 어머님 홍성인여사의 일기책 ‘얘야 내 일기장 좀 다우’에 실린 서문입니다. 어머님께서 불기 2560년(2016년) 4월 29일(음력 3월23일) 별세하셨습니다. 애도해주신 모든 분들의 후의에 힘입어 아버님 계신 양지바른 곳에 어머님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왕생극락을 빌며 마음의 흰꽃송이 영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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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모 2016.05.07 20:1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뜻한 어머님의 자식 사랑과 그러한 어머님에 대한 아름답고, 한없는 사랑과 그리움을 구구절절이 느낍니다.
사랑이 가득한 아이, 부모의 달인 5월 더욱 그립고 불러보고 싶으실텐데 어머님을 천상에 보내드린 애절한 마음을 갖이 합니다. 힘내세요.
by 서황석 2016.05.08 00:57
훌륭한 자식뒤에는 반드시 어머님이 있다 합니다.
요지음 언론인도 곡필을 밥먹드시 하는 세상에서
노창현아드님은 言論正道(언론정도)라는 사명에
충실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에 독자들에게
기쁨과 훈훈함을 주고 있습니다.
편안히 쉬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by 이계선 2016.05.08 06:15
둘째 딸 은범이와 돌섬산책을 하다가 가슴에 붉은줄이 있는 로빈새를 발견했습니다. 돌섬에는 로빈새가 많아요. 막내동생처럼 나에게 잘해주는 베어마운틴 숲속 도적 로빈훗드생각이 나서 반가웠습니다. 작년 4월 19일에 막내완이가 우리 7남매곁을 영원히 떠나갔으니까요. 로빈의 사모곡이 나를 슬프게 하는군요. 로빈의 모친께서 알츠하이머를 앓다 가셨다니? 파킨슨을 앓고 있는 나로서는 동병상련으로 더 가까운 아픔과 그리움을 느낍니다. 로빈의 모습 성품 문학성향이 어머니에게서 받으셨군요. 나역시 아버지없이 태어난(?) 예수님도 아닌데 100% 어머니를 닮았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 이은혜권사님은 2년전에 돌아가셨지요. 내일이 어머니주일인데 어머니가 보고싶습니다. 이세상에 안계셔서 그리워해도 소용없는데 더욱 보고싶으니! 아, 어머니. 당신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형제 성모와 정촌이 나오셨군요.
by 노창현 2016.05.08 09:38
조화백님 서황석선생님, 그리고 목사님 위로와 격려의 말씀 너무나 고맙습니다..유무선 이메일로도 많은 분들이 애도하고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거듭 감사드립니다..
by 최경자 2016.05.08 14:44
훌륭하신 어머님에게...삼가 고인의 명복을 간절히 빕니다.
처음 읽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하고 사랑이 절로 느껴지는가 했는데..영면하셨다니
아...슬퍼네요.!!  생각나는 5월  더욱 사무치는 5월.. 같이 그 슬픔을 함께 못 나눠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 슬픔을 멀리서 함께 나눌께요. 힘내세요, 대표님.!!
언제나...대표님과 함께 합니다. 슬플때나 기쁠때나...말입니다.
또한 어머님께서도 편안히 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by 노창현 2016.05.08 21:49
감사합니다 최선생님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서 보내주시는 위로의 말씀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by 여익환 2016.05.08 23:01
제 어머니가 2년전 89세로 하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습니다.
노대표님의 모친상을 듣고 가슴 멍해지더군요...
한국 방문 때마다 침상을 떠나지 않고 마음 쏟아내는 당신이 기억 났기 때문입니다.

좋은 곳에 가셔서 아프지 않는 몸과 맘으로
또 다른 일기를 쓰시는 그 분의 더 멋진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어버이 날의 슬픈 맘 위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실은 저도 오늘 많이 울었었거든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여익환 드림
by 김정권 2016.05.09 07:13
무슨 말씀을 드릴 지 모르겠읍니다.  My deepest condolences, 멀리서나마 슬픔을 함께 합니다. . .
by 심갑석 2016.05.09 11:49
삼가  어머님의  명복을  비옵니다.
자주  소식을  못 전하다보니  황망한  어머님의  부음조차  늦엇습니다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가족모든 분들께드립니다.
 DOBBS FERRY 에서  심  갑석  올림
by 이춘호 2016.05.09 13:13
오늘에서 이메일을 보고서야 알았네요.
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책 만들 때 글 읽으면서 느꼈던 마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노 대표를 비롯 가족 모든 분께 위로의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by 노창현 2016.05.10 08:31
여총장님, 김교수님, 심선생님, 이대표님 감사합니다..보내주신 따뜻한 격려의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by 이상숙 2016.05.10 23:22
뒤늦게 소식 접했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니는 정말 멋지고 재주가 많은 신여성이셨네요. 'sweet home'을 통해, 그림도 잘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극락왕생을 기도하겠습니다.
by kimchikim 2016.05.11 14:38
홍여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2006년 4월이었습니다. 이후로 작년까지 건강하셨을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병환중에 계셨을때 조차도 변함없이 '흥'을 잃지 않은 분으로 기억이 됩니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예외없이 웃음 한가득 유쾌하고 즐거웠지요.

저희 집에 처음 오신 날 옥상을 보시고는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화사한 봄을 만날줄 몰랐다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모습에 반해 '꽃 보다 아름다우세요' 라며 꽃을 따서 머리 옆에 꽂아드리니 그만 함초롬히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던 당시의 추억이 너무도 생생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진을 다시 접하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가슴이 먹먹해 오네요.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부디 평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다시한번, 삼가 고 홍성인 여사님의 명복을 빌면서 가족분들께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by 김태환 2016.05.17 02:58
노 창현 대표님,
훌륭한 어머님을 보내셨군요.

그러나, 저는 노 대표님의 지극한 효성에 저 자신 너무나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라하다 더 미룰 수 없어서 이제 위로의 글을 올립니다.

저는 어머님이 뉴욕에서 1997 년 7 월 말경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루고 10월에 다시 뉴욕에 가서 집안 정돈을하려 했는데, 1974년 10월에 미국 처음 오실 때 가지고 오신 짐 가방에 붙은 주소 태그가 그대로 인 것을 보고  계시든 거처를 처분하면 어머님 유품을 거의 다 버리게 될 것을 염려하여 뉴욕에 남아서 직장에 근무하며 2010 년 까지 지내다 집사람의 신병으로 주요 유품을 롱 아일랜드에 사는 질녀에게 맡기고 가족이 있는 LA 로 돌아 왔읍니다.

어머님을 보내신 아픔을 이겨내시고 정론을 위해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LA  에서 김 태환 드림
by 노창현 2016.06.19 22:47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의에 힘입어 어머님 49재를 지난 16일 잘 모실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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