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의 재가 되어 가신 님
by 국인남 | 12.11.13 09:21

이른 아침 포항 연화장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운구차를 붙잡고 울부짖는 모습이 처절하기만 하다.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고인의 영정(影幀) 앞에서 큰 절을 올리며 작별을 고했다. 잠시 후, 곧바로 우리차례가 되었다. 시아버님을 운구차에서 모셔다가 불화로 앞에 안착시켰다. 형제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을 향해 외쳤다.

 

“아버지, 불 들어가요 빨리 나오셔서 환생하세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주님 품에 편히 안기소서.”

“성모마리아여, 아버지를 받아주소서”

 

집례자는 한 시간이 지나자 유족들을 다시 불화로 앞에 모이라 했다. 잠시 후,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불화로가 열렸다. 회색빛 뼈의 잔해가 사그라지며 재만 남았다. 재를 빗자루로 쓸어 담아 분쇄기에 넣고 갈기 시작했다. 금 새 한 사람의 형상은 간 곳이 없고 한 줌의 재만 남아 작은 유골함에 담겨졌다. 그 광경을 보면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성서의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해 가을, 시부께서 별세하셨다. 이 땅에 8남매를 낳아 많은 자손을 번성시켰다. 93년 동안 짊어진 육신의 무거운 짐을 활활 태우고 이제 영면(永眠)의 시간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생전에 아버님을 교회로 인도해 드렸다. 얼마 동안은 교우분들과 친교도 나누며 노후를 잠시 교회에서 보냈다.

 

그러나 자손이 많다보니 각자가 믿는 종교는 제 각기 달랐다. 생전에 몇 번이고 기독교식 장례를 아버님께 부탁 드렸다. 그런데도 결국 유교식 장례를 치렀다. 아마도 형제들이 서로 자신들의 종교를 주장할까봐 가장 전통적인 유교식 장례를 치루라 하셨나 보다.

 

형제들은 수시로 상을 차려 제를 올리고, 술을 따르고 곡을 했다. 같은 종교를 믿고 있는 바로 위 형제와 나는 먼발치에서 절차를 따라 묵도(黙禱)했다. 수차례 제사를 지내는 유교식 장례를 보면서 무언가 기독교적인 장례절차와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장례식 때 흔하게 다툼이 일어난다. 특히 기독교가 예민하게 대응하고 반격하는 편이다. 심지어 ‘마귀, 사탄’으로 몰아세우는 사례도 있다. 나는 이번 장례절차를 보면서 또 다른 문화와 풍습을 만났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치 하루가 천년을 사는 것 같은 낯 설은 분위기 속에서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작년에 친정아버님을 보내드릴 때는 저녁 늦은 시간을 쉴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장례절차도 기독교식으로 깔끔하고 경건했다.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온 밤을 새우며 고스톱을 치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 또한 저속한 언어와 담배까지 피워대니 정말 지옥 같았다. 새벽녘까지 술이 만취가 되어 횡설수설하며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상주는 그야말로 죄인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상주는 ‘빈소를 비울 수가 없는 것’이 법이라는데,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법을 따라 함께 행동하는 수밖에.


 

다음날 새벽, 마음을 가다듬고 이방인들 속에서 잠시 이방인이 되어 제를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상객이 조문(弔問)을 할 때마다 “남자 상주는 애고애고, 여자 상주는 아이고 아이고, 사위와 친지는 으이으이”하며 곡을 했다. 그리고 절을 올리고 술잔을 따라 올렸다. 이 모든 행위가 가신님을 그리며 간절하게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행위로 보였다. 기독교적으로 비위하면 찬양과 기도와 회개와 비슷하다.


 

또한 발인 후 삼일 만에 ‘삼우제(三虞祭)’를 지내는 것도 비슷했다. ‘삼우제’는 자손들이 다시 가서 무덤이 훼손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예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뒤, 삼일 후 세 여자가 무덤을 다시 찾아갔다. 이 또한 확인과 돌봄의 차원에서 가신 분을 기리는 마음이다.


 

흙으로 다시 돌아가신 님


 

 


필자는 잠시 유교식 장례문화를 접하면서 많은 것을 알고 배웠다. 사람이 만든 법과 규례가 대부분 흑백논리로 만들어졌기에 많은 분쟁(紛爭)의 씨앗을 만들어 낸다. 법과 규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가족간의 화목(和睦)이다. 고인이 육을 벗고 영의 세계로 가는 것도 희생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희생을 분쟁과 다툼으로 보답하는 것은 불효라 생각한다. 서로 한 발 물러서서 서로 다름을 수용하며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만이 남은 자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흔히 장례절차로 형제간에 우애가 깨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가장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성서에는 분명 ‘내 형제와 화목치 않고는 예물도 드리지 말라’ 하셨다. 무조건 유교식 풍습과 전례를 무시하고 정죄하는 것보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가신 분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형제 모두가 매 번 제를 드릴 때마다 각기 상대의 종교를 인정해 주었다. 이렇게 상대의 종교를 존중해 주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종교도 인정을 받았다. 수차례 서로 다른 종교의식을 행하면서, 다름 안에서 공통점도 발견하며 점차 자연스럽게 화합과 용서도 이루어졌다.

장례식을 다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서 모두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도 높고 청명(淸明)했다. 하늘을 향해 집 안 어르신이 한 마디 하셨다. “아따, 우리 장인어른 천국 갔다, 극락 갔다 이쪽저쪽 다니시느라 바쁘시겠네.”

 

이 말에 화답하듯, 한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며 자손들에게 한 마디 남기셨다.

“야들아, 장례식은 화해와 용서의 자리다. 서로 사랑하거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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