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
by 김은주 | 12.06.03 02:51

은주에게,

우리 학교에서 하나의 어린 생명이 스스로 목슴을 끊었다. 어떤 동기로, 어떻게 그 어린 소년,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단절하는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도 충격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문(hearsay)에 따르면..이 학생은 다른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우리 학교에서도 견디지 못하는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아니면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그랬는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교직원이 신문과 방송에 학교 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을 못하게 한다. 그냥 우리는 "no comment"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흘러나오는 "설" 들은 다 추측일 가능성이 높다. 그 날..학교에서 "점심시간에 emergency meeting 이 있습니다. 다들 도서실에 모이세요." 하는 announcement, 난...아무 생각없이.. 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죽음에 대해 접했다.


 

교장이 한 말들이 인상깊게 내 마음에 다가왔다. "우리는 다 사랑받기를 원해요. 사랑하세요." "우리는 소속감이 있어야 해요. 학생들에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피난처/집 을 찾아주세요." "우리는 즐거워야 해요. 근심걱정 말고...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해요." 한 어린 학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런 말씀을 해 주신 교장선생님, 이젠 은퇴를 하셔서 이 학를 떠날 교장 선생님...이 교장이 없는 학교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충동도 생긴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방법의 다양성..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는가? 심리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했다. 동물들에게 사랑의 의미, 심지어는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내용들 중에 식물들도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면, 꽃 과 풀도 positive 반응을 보여 무럭무럭 잘 자란다고 한다.

하물며..식물도 이런데...인간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면, 사랑의 결핍증이 있으면...늘 남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학대만 받는다면...인생이 아까워서라도 벌떡 일어나 사랑을 받을 준비를 하고, 사랑을 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변해야겠다.


 

학교에서나 개인적으로 이런 비상사태가 일어날땐 늘 ‘crises intervention/counseling team’ 이 동원된다. 누구든지..이 비극으로 인해 자신도 따라서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거나 (copycat 자살도 많다고 한다) 아니면 너무나 슬퍼서 일상생활하는데 힘이 들면 그들을 위로하고 상담하는 team 이다. 이런 비극 속에서 그 상담 team 이 도움이 될 수도, 못 할 수도 있지만..무엇보다 평소 자신의 정신건강을 잘 돌보아야 하겠지.

 


은주야, 너는 심적인 충격이나 부담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찾는 "친구 정신과 의사" 가 있지. 이 분을 통해 다른 치료사도 알게 되고...또 당장 누구와 "상담" 이 필요할 때는 이 "친구 의사" 에게 SOS 를 치곤하지.

  


그리고 치료를 넘어서 영혼을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아픔까지 알아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거야. 배우자도, 부모도, 자식도 그런 사람이 되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그 깊은 절박과 희열과 인생의 무거운 모든 것을 함께 안아주고 함슬퍼하고 함께 그 짐이 되고 날개가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럴때 "신"(종교)을 찾는다. 신에게 의지하고 기도하고, 절하고....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때문에 신에서 받을 수 있는 위로가 있고 오직 인간에게 받을 수 있는 위로와 신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내 학생도...얼마나 그 인간의 "acceptance" 가 필요했을까?

내 학생도, 얼마나 소속감이 필요했을까?

내 학생도 얼마나 인간다운 사랑이 필요했을까?

내 학생도 죽음을 선택하기전...얼마나 아우성 쳤을까?

내가 가르친 학생은 아니지만 내 학교에서 갈팡질팡했다는것을 알게된 후...커다란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 한다. "친구정신과의사" 의 말로는 이 'grieving process 도 몇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 학생이 자신의 삶을 단절 한 후...the life went on and goes on. 다음날 교장 송별 party 가 예정대로 열렸다. 그 다음날 운동회도 예정대로 열렸다. 그 다음날 난 바삐..과학시험 채점에 몰두해..복도에 나와서 아이들의 상황도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아이가 죽고 난 후...이 세상은 그냥 돌고 돌아갔다. 이 아이가 죽고 난 후 그냥 태양도 뜨고 지고 비도 오고 구름도 흐르고 별도 뜨고 사람들은 바삐 걸어 다니고 자동차 computer 들의 기계는 작동을 쉼 없이 한다.

이렇게 한 아이의 생명이 이 지구에서 지워졌는데...우리는 멈추지 않고 그냥 전진하고 만다. 깊은 슬픔, 폐부를 가르는듯한 통증을 느낀다. 바로 이 순간에만. 이 순간이 지나면...나도 그냥 평소의 삶을 살겠지. 아~ 야비한 인간들!!!

은주가 은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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