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말로 쇼-락가는 ‘폭풍’이란 뜻이다. 쇼-락가는 적막한 초원을 질풍노도(疾風怒濤)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다.
흔히 10대 청소년기를 일컬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한다.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또한 열정과 충동으로 기존의 권위와 체제에 숨막혀하며 반항하는 특성이 강한 시기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도전적이고 격정적이다.
한편으로는 강한 개성과 생명력을 발산하므로 아름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아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인생의 한 순간을 휩쓸고 지나가는 폭풍 같아 보인다.
원래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슈투름 운트 드랑)란 말은 독일의 문인 ‘클링거’(F.Klinger)가 1776년에 발표한 희곡작품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사조에 대항하여 독일을 중심으로 감정의 해방과 독창성, 직관 등을 강조했던 낭만주의적 사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정치사회적으로는 귀족체제에 반발을 느낀 시민계급의 저항의식이라고도 하는 바, 이에 합류했던 당대의 쟁쟁한 문인들로는 ‘헤르더’(Herder)와 괴테(Goethe), 쉴러(Schiller), 바그너(Wagner), 뮐러(Müller) 제씨(諸氏)가 거론된다. 괴테의 작품으로 1774년에 발표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이들에게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소설 속의 베르테르가 했던 것처럼 갈색 장화와 노란색 조끼, 그리고 파란색 재킷을 입고 권총으로 자살을 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사조가 20대 이상으로는 잘 먹혀들지가 않기 때문에 요즘은 주로 10대 청소년들을 묘사하는 언어로 ‘질풍노도’란 말을 쓰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지금 다시 들춰내는 것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열강(?)의 행태가 마치 10대 청소년들의 그것처럼 불안하고 격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제국주의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비로소 새로운 상생(相生)의 시대가 확산되고 있는 작금에 아직도 자국(自國)의 민족주의적인 감정과 충동에 휩쓸려 망언(妄言)을 일삼고 경거망동(輕擧妄動) 하는 나라들을 보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까닭이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언제 합리적인 양심이나 정의를 따라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소인배처럼 이익만 추구하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철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리석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교활한 이들의 행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정의롭다거나 테러에 대한 전쟁이라고는 볼 수 없고 그저 자국 군수업자들의 이익이나 챙겨주고 석유나 강탈하겠다는 이상한 열정으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지난 봄 미국 하버드대 정치행정대학원인 케네디스쿨 산하 정치연구소(IOP)에서 전국 대학생 1206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조사 결과 ‘미국이 다른 나라를 또 침공할 것’이라고 믿는 대학생은 57%, ‘향후 5년 내 미국에서 대규모 테러공격이 재발할 것’으로 생각하는 대학생은 4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기(狂氣)에 광기(狂氣)가 꼬리를 물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중국이 대만이나 티벳을 향해 보이는 행태나, 일본이 주변국들을 향해 보여주는 행태는 민족주의적 열정이라고 치부하기 힘든 지나친 광기(狂氣)가 서려 있다.
이러한 때에,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광기(狂氣) 어린 맹목적 열정으로 미국에 감사하느니 일본에 감사하느니 하는 무리들은 무엇이고, 대세에 발맞추어 선견지명으로 일을 잘 처리하고 계신 국민의 대표를 호시탐탐 비난만 하려 드는 무리들은 또 무엇인지 한심하기조차 하다.
진정 세계는 다시 그 유아기적인 제국주의적 질풍노도의 시대를 갈구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몇몇 시절을 오해한 나라들이나 집단들이 그처럼 광기어린 열정으로 자신의 쓰레기 같은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아무튼 오늘날에는 광기 어린 국가들의 기이한 제국주의적 낭만주의에 대응하는 진정한 의기(義氣)와 열정(熱情)의 사해동포주의적인 낭만주의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오늘도 나는 이러한 사해동포주의적 낭만주의가 폭풍처럼 일어나 광기어린 제국주의적 낭만주의를 뿌리채 뽑아버리기를 나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주님, 폭풍을 일으켜 주소서! 우리의 심장에! 이 세계 민초(民草)들의 심장에!
쇼-락가 (IEEJUG)
폭풍이 일어난다.
적막하던 초원이 바람의 울부짖음으로 흔들린다.
침묵에 길들어 시들했던 풀들도
폭풍과 함께 야성(野性)의 함성을 지른다.
폭풍이 휘몰아친다.
길 없는 초원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길 잃고 방황하던 뿌리 뽑힌 풀들도
폭풍의 길을 따라 날아간다.
폭풍이 지나간다.
가로막고 선 나무 뿌리 채 뽑아 놓은 채
썩은 가지 꺽어 놓고
초원에 깊은 자국 남긴다.
폭풍의 길은 하늘에 있다.
애초에 하늘에서 태어나
하늘의 힘으로 살다 하늘에서 잠든다
내 영혼의 고향이다.
*쇼-락가 (IEEJUG) : ‘폭풍’이란 뜻의 몽골어, 보통 눈이나 비를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