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컴퓨터
by 앤드류임 | 18.12.09 03:31

          

엊그제가 어머니 팔순 생신이었다. 멀리 있는 아들이 카톡으로 축하 인사를 드리니 즉시 화상통화를 걸어오신다. 어머니는 이렇듯 스마트폰이며 컴퓨터를 젊은이들 못지 않게 능수능란하게 다루신다.

 

아버지께 배운 실력이다. 아버지는 은퇴 후 똑같은 사양(仕樣)의 컴퓨터를 두대 사서 책상에 나란히 놓으시고는 어머니가 당신만의 컴퓨터를 갖게 하셨다. 재밌는 것들도 찾아보고 신문도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애들에게 이메일도 쓸 수 있다면서...

 

그리고 컴퓨터 쓰는 법을 자상하게 가르치셨단다. 이해 못하면 이해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자세히 반복해서 알려주셨단다.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걸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 가족 이메일은 세례명 한국이름의 약자 그리고 성 순서로 통일하자며 주소 만드는 걸 도와주셨단다. 사실 네 남매의 이메일 주소는 모두 아버지께서 만드셨고 우린 아직도 그 이메일 주소를 쓰고 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보여주는 일화(逸話)가 있다. 어머니께 이메일의 패스워드를 생각하라고 하시더니, 어머니가 그 패스워드를 입력하실 때 당신은 돌아서 계시더란다. 안 보느라고...

 

어머니는 웃음이 나서 혼났단다. 할머니 된 아내가 무슨 비밀이 있다고 그걸 안보려고 돌아서기까지 하는지 귀엽고 우습더란다. 정작 당신의 비밀번호는 어머니께 말해주시고 가끔 밖에서 이메일 내용 확인해달라 부탁도 하셨다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재산을 모으셨는지, 남겨 놓으셨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아버지께서 "내가 그나마 모아 놓은 거 너희 엄마 다 쓰시고 가게 해라. 나 만나 평생 고생하며 날 위해 살았으니 자격있지 않니"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는 사실 뿐이다.

 

아버지는 남자로 살다 가셨다. "남자의 인생 책임이 전부다"하시던 당신의 말씀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셨으니 말이다.

 

기일(忌日)인 오늘 내 아버지를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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