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성범죄 도가니에 빠져있다.
최근 통영 초등생 사건과 제주 올레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한 층 더 높아졌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 범죄자들의 재범 가능성이 높이 대두되며 ‘성범죄 알림e’ 서비스 조회는 사용자가 폭주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건이 뜨겁게 달아오른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지금 한국은 또다시 올림픽에 열광하고, 연예기사 속보에 흥분하며 사건들을 잊어간다. 경악(驚愕)을 금치 못할 야만적인 뉴스라 할지라도 일주일이면 그 뉴스는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무관심해지는 우리는 매번 근본적인 원인해결은 하지 못한 채 제2의 피해자를 낳고 만다.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있었다면 진작에 이런 사건들의 싹을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2009년 많은 사람들을 분노와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나영이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 때도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 2의 나영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근본적 원인 해결책을 우리 사회는 분명히 찾아야만 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아동 성범죄는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법치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솜방망이 식의 처벌로 아이들과 여성들은 여전히 위험하다.
여성 납치수법도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지능적으로 발전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가끔 여성들이 겪은 납치사건에 관한 글들이 올라온다. 여대생이 늦은 시간 귀가하던 중에 홀로 훌쩍이던 꼬마아이가 길을 잃었다면서 엄마를 찾으러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해왔고, 안쓰러운 마음에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아이를 따라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는 자꾸만 여대생을 인적 드문 골목으로 유인했고,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경계하며 걷다 보니 자신의 앞에는 장정 서너 명이 길목을 가로막고 여대생에게 달려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여대생은 냅다 달려 문을 닫으려는 약국으로 간신히 들어가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까 그 꼬마아이가 천연덕스런 얼굴로 “누나 아빠가 기다리는데 왜 여기에 있어?”라며 자신을 계속해서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황당하고 소름 끼치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를 해도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처벌도 할 수 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이런 비슷한 사건을 겪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 내가 납치될 뻔 한 장소는 인적이 드물지도 않은 지하철 안이었다. 고3 때 과외를 마치고 지하철을 탔는데 한 남자가 나를 자꾸만 쳐다보길래 일부러 그 남자와 다른 칸에 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그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 때부터 머리가 하얗게 됐고, 그 남자는 내가 거부반응을 보이자 되려 화를 내며 이렇게 소리를 쳤다.
“너 아까 아빠가 좀 혼냈다고 지금 계속 성질부리는 거야?!”
나는 순간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은 일부러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남자가 내 아빠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혼 좀 더 나야겠다며 나를 막무가내로 끌고 내리려고 했다. 순간 끌려 내리게 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온 힘을 다해 버텼다.
그 많은 사람들은 아빠가 버릇없는 딸을 훈육(訓育)한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지 무섭도록 무관심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가 내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남자를 가방으로 내리치며 발악하기 시작했고, 차마 진정 딸이라면 아빠에게 할 수 없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육두문자들을 악을 지르며 내뱉었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한 청년이 자신이 내 오빠라며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내리라고 그 남자를 협박하며 멋지게 영화처럼 도와주는 덕분에 나는 무사히 진짜 아빠가 있는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아무리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사회라지만 생물학 적으로 여성은 약자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여성들을 위한 성범죄 관련 법 조항들은 필히 개선되어야만 한다. 신호등에도 여자를 그려 넣는 평등보장이 아닌, 진정으로 여성들을 지켜내고, 안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보호가 급선무다. 살인은 당연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임에 분명하다.
성범죄 역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리는 중 범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사건들의 뿌리를 찾아 해결하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물론 강력한 법으로 개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왜 성범죄자들의 재범 확률이 높은지, 성범죄자들이 왜 발생하는지 그 근본의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새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야만적인 성범죄 사건들의 범인 대부분이 재범자(再犯者)들이다. ‘아동 성범죄자 프로파일을 분석해 보면 그들은 대부분 정상이 아니다. 성적 충동을 해소 못 하고 판단 능력도 결여돼 있다.’ 그들의 재범을 막지 못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에서는 그들이 수감되어있을 때에도, 형이 끝난 뒤에도 그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정신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미국은 강력 성범죄자들과 1대1 상담치료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40명을 모아놓고 집단 정신교육을 할 뿐이다. 범죄의 원인은 아동들이 범죄의 표적으로 쉽게 노출이 되어있기 때문도 아니고,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 약자기 때문도 아니다.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게 하는 우리 사회의 혼란스러운 구조와, 그 문제를 알고도 방임하고 방치하는 무서운 무관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