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약(NYACK)은 맨해튼에서 허드슨 강변 북쪽에 위치한 곳인데 자동차로 약 4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주 오래되고 산과 강이 아름답게 조화된 TOWN이다.

렌트한 주택은 50년 정도는 됐을 2층집 목조건물인데 외벽은 빨간 벽돌로 마감되어 있었고 동화 속에서 보던 그런 집 같았다. 우리가 살게 된 2층은 방 1개, 거실, 부엌 그리고 다락방 1개가 있고, 거실에는 벽난로(壁煖爐-FIREPLACE)와 다락방으로 가는 둥근 계단이 예쁘게 설치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밝고 주변 경치가 좋았다.

집주위엔 몇 그루의 오래된 고목나무와 뒤뜰은 인근 기술고등학교의 넓은 잔디 운동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처음 접하는 벽난로에 호기심이 생겨 난방이 잘 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장작불 피우며 온가족이 둘러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장작불과 석쇠가 만들어내는 삼겹살 요리를 즐겼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자주 벽난로 난방을 즐기다 보니 주인이 쌓아둔 커다란 장작더미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모두들 걱정하며 벽난로 피우기를 자제(自制)하자고 했지만 삼겹살 요리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아내가 밖을 나가더니 차곡차곡 쌓인 장작더미를 이래저래 다시 정리하여 부피를 크게 만들고 들어왔다. 아마도 주인여자의 질책(叱責)과 비용부담(費用負擔)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확연(確然)하게 장작이 줄어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렌트비용은 매월 1,500달러이며 보증금(保證金-SECURITY DEPOSIT: 이사 나갈 때 돌려받는 돈) 으로 한 달 반치 2,250달러와 선납금 렌트비 1개월분 합계(合計) 3,750달러를 한꺼번에 지급하고 나니 내 몸에서 살점 한 점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전기료와 통신비는 별도로 납부해야 하고 수도료만 집주인이 부담한다는 조건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엄청 비싼 집세이지만 이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맨해튼에 비하면 절반정도의 금액이었다.

집주인은 40대 중반의 백인여자로 10여 년 전에 이혼하고 검정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으며 맨해튼에 있는 법률 사무소 같은 곳에 근무한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집을 드나들 때 마다 1층 창문 커튼사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검정고양이의 모습을 보면 학창시절 읽었던 EDGAR ALLEN POE의 검정고양이가 생각났고 아이들도 기분 나쁘다고 했다.

이사한 다음날 작은애의 학교입학을 위하여 온 가족이 걸어서 몇 군데를 찾아다니며 자문(諮問)을 얻고, COUNTY(한국의 區, 郡정도의 行政單位) 교육청에서 중학교 입학수속 절차를 마쳤다.

초등학교 고학년(高學年) 입학을 시도했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연령제한도 있고 해서 이미 학기가 진행 중인 중학교 1학년 과정에 등록하였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눈으로 보이는 실내체육관, 주차장 등 각종 시설물들이 아주 깨끗하고 넓은 잔디운동장이 인근 대학으로 연결돼 중학교인지 대학캠퍼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1주일쯤 지나서 아내와 TOWN의 MAIN STREET를 구경 갔었는데 아주 아름다운 STAINED GLASS (구워서 착색한 여러 개의 유리조각을 납땜하여 다양한 문양을 만든 조명등기구인데 매우 아름답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여 미국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제품)가게가 눈에 띄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을 구경하는데 “한국분이세요?”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주인이 한국 사람이었다.

아내는 제품들이 하나같이 아주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주인 양반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관심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 한국 사람은 오직 자기네 가족뿐이었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2번째의 한국인 가족에게 반가움, 놀라움 그리고 어떻게 이곳에, 어떤 연유로 왔는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였다.

의자를 권하며 아예 본격적으로 탐문 수사하듯이 질문을 쏟아 부었다. 적당히 몇 마디만 대답하고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가게를 빠져나왔다. 얼마나 한국 사람이 그리웠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오전 다시 가게를 찾았다. 두서없는 대화들이 수없이 오고갔다. 그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수집한 자료와 이분의 말씀을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주된 직업은 세탁소, 식당, 야채가게, 와인가게, 택시운전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어떤 직업을 구하기 전에 우선 영어실력을 튼튼히 해야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 COUNTY에서 운영하는 무료 ESL(ENGLISH SECOND LANGUAGE-5단계)과정에 등록하여 영어공부부터 열심히 하라는게 그분의 충고였다.

다음날 바로 아내와 함께 집근처에 있는 학교에 가서 등록을 하고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아내는 1단계 학급에 난 4단계 학급에서 하루 3시간씩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점심 식사 후 이 가게로 와서 먼저 이민 온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이 땅에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수집과 사회, 문화, 경제를 배우고자 애를 쓰며 그분의 장사를 도왔다.

가게 주인 L씨는 50대 후반으로 한국에서 H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이민 온 지는 15년이 넘었다고 했다. 50대 중반의 그분 아내는 이 TOWN 있는 신학대학원에서 성직자(聖職者)를 목표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그분의 아내가 가게로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미 남편을 통하여 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축복이니 우리 함께 축하기도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았고 기도주관은 그분의 아내가 했다.

“ 주여! 이렇게 귀한 주님의 자식을 이곳으로 보냈으니 이는 놀라운 주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나이다. 이에 성령으로 힘을 모아 주님께서 원하는 뜻을 저버리지 않도록 큰 꿈을 이루어 낼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대충 이런 내용의 기도가 끝났다. 얼떨떨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그분의 아내가 날더러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가끔씩 절에 다녔고,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 교회에 잠깐씩 다닌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것 보세요, 안 선생님이 이곳으로 오신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그동안 절에 다니면서 주님을 멀리 하였으니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오도록 주님께서 이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온가족이 교회를 나가야 합니다. 또한 초기 이민자에게는 교회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꿈과 용기와 힘을 실어 주고 직업도 마련해 줍니다. 이번 주일은 가족모두 반드시 저의 교회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세요!” 얼떨결에 “아, 아, 예”하고 말았다.

직업이 없었지만 매일같이 오전 7시에 기상하여 2층 발코니에 나가서 3월의 찬 공기를 깊게 호흡하면서 가벼운 체조와 명상을 하였다. 자동차 운전면허는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신청한 상태였으며 한국에서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 왔기 때문에 자동차를 구입하기로 하였다.

영어실력이 충분치 않아 한국인 광고책자에 있는 자동차 매매상에 전화를 하여 자동차를 구입하고 싶다고 하자 그 이튿날 DEALER가 집으로 왔다. 몇몇 한국 분들이 승차감, 경제성, 내구성이 우수한 TOYOTA의 CAMRY를 추천하여 그것을 구입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DEALER가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권유한 CHEVROLET사의 TRAILBLAZER라는 SUB를 구입하고 말았다.

7인승으로 큼직하고 승차감이 아주 좋았다. 한참이 지나서 알았는데 이 한국 사람이 무려 5천불 이상 바가지를 씌운 사실에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 자동차로 그동안 온 가족이 겪어왔던 여러 가지 불편함들이 해소 되었고 매일같이 온가족이 인근 동네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문화를 배우고 도로를 익히고자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낮에 운전을 많이 했었던지 피곤함을 느껴 10시경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잠이 들었을까 아래층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더듬더듬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를 약간 넘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