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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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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맞은 미국판 한가위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8-12-25 (화) 04:52:16


112318 오늘만같아라.jpg

      

전화는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왔다. 318번 도어를 배정 받았다. 내가 있는 곳은 100번대다. 건물을 왼쪽으로 돌아가니 200번대가 나왔다. 다시 코너를 도니 400번대다. 그리고 막다른 길이다. 300번대는 어디에 있지? 반대편에 있나? 왔던 길을 전부 되돌아 갔다. 원래 있던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300번대만 따로 떨어져 있다. 한산한 편이었다. 318번 입구를 어떤 트럭이 막고 있다. 내가 내려서 가까이 가니 자리를 비켜줬다. 이번에도 깔끔하게 후진에 성공했다.

 

잠을 잘못 잤나? 며칠 전부터 어깨가 결리더니 오늘은 고개를 돌리기 불편할 정도로 아프다. 부항기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왼쪽 승모근이 단단히 뭉쳤다. 셀프 맛사지로 풀어야지.

 

기다리며 시민권 인터뷰 테스트 공부를 했다. 100문제인데 안내 책자가 있다. 유투브에 관련 영상도 많다. 천천히 읽어나가니 내용도 재미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이념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해가 됐다. 매일매일 조금씩 공부해야지.

 

10시가 넘어서 서류를 받고 나왔다. 가까운 곳에 월마트가 있다. 트럭 프렌들리라기에 가봤다. 주차장만 놓고 보면 맞다. 다른 트럭 몇 대가 한쪽에 서 있었다. 그 옆에 세우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식품부가 빈약하다. 과일, 야채, 정육, 생선, 델리는 아예 없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 있는 것 중에서 몇 개만 사서 나왔다. 주차장 건너편으로 보니 Kroger 매장이 있다. 오늘 아침 배달하고 나온 곳이 Kroger 물류센터다. 가 봤더니 훌륭한 식품점이다. 가격도 괜찮고 물건도 많았다. 내가 배달한 식품도 여기서 팔리겠지. 월마트에서 못 산 식품들을 샀다. 몰에 Dragon House라는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콤비네이션 볶음밥을 포장해 나왔다. 맛은 괜찮은데 짜다.

 

가까운 트럭스탑으로 갔다. 낮이니 자리는 널널하다. 주차하고 샤워를 했다. 내일이 추수감사절인데 깨끗하게 맞이 해야지. 면도하고 더러운 옷도 갈아 입었다. 그동안 밀린 설거지도 같이 했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어깨도 아프고 해서 한숨 잤다.

 

4시에 출발했다. 6시에 배달처(配達處)에 도착했다. 정문을 통과해 들어가니 뭔가 이상했다. 정면에 한쪽이 다 트여 있는 건물이 있는데 뭔가 무너져 내린 듯 잔해가 잔뜩 쌓였다. 가까이 가보니 쓰레기다. ! 여기는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이었다. 그럼 배달처는 어디지? 내가 들어온 입구 바로 옆으로 길이 있었다. 배달처에 들어가니 내부가 좁고 대기하는 트럭이 많았다. 주차할 곳이 있으려나? 누가 오더니 바깥 길에 세우라 했다. 밖에는 다른 트럭이 한 대 서 있었다. 밖으로 나가 후진으로 그 트럭 뒤에 세웠다. 다른 트럭이 한 대 오더니 내 뒤로 섰다. 서류를 들고 접수 사무실로 가니 입구에 자정부터 접수하니 오후 1130분 이전에는 오지도 말라고 써 있다. 외부 트럭은 회사 내부에 주차 못 한다고도 돼있다. 이런 인심이 고약하구만. 2시간 거리 밖에 안 되는데 왜 아침 6시 배달 다음에 오후 1130분 배달인지 이해가 됐다. 오늘 하루는 실질적으로 공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문제도 있다. 추수감사절 휴일로 모든 트럭세차장이 쉰다. 24시간 영업하는 블루 비콘도 자정에 문을 닫는다. 개인 세차장은 금요일에도 아마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월요일까지 계속 쉬는 것이다. 그동안 트레일러 세척은 어떻게 하나? 아까 일차 화물을 내리고 확인하니 트레일러 내부는 엉망이었다. 여기 일찍 와서 배달을 마치고 12시 전에 블루 비콘에 가서 트레일러를 씻을 생각이었다. 모든 계획은 틀어졌다. 비질을 열심히 할 밖에 도리가 없다. 발송처에서도 사정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추수감사절의 악몽

      

 

      

이럴수가. 추수감사절의 충격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서류를 내밀었는데 오늘 약속이 없다는 것이다. 모바일 앱으로 날짜를 확인하니 금요일(23) 2330분이 약속이다. 여기서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내가 화물을 받은 것이 화요일(20)이다. 돈으로 계산되는 거리는 총 280마일이다.(내가 받는 돈은 150달러 남짓이다) 6시간 거리를 사흘 동안에 배달하라는 얘기다. 하루 2시간 꼴이다.

 

나는 당연히 다음날 배달이겠거니 생각했다. 트럭 수리 때문에 이틀 정도 쉴 각오는 했지만 이런 어이없는 배달 일정으로 이틀을 쉴 줄은 몰랐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긴 한가보다. 날짜를 확인 못 하다니. 진작 알았더라면 아까 트럭스탑에서 계속 쉬었을 것이다. 가까운 도시로 나가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며 추수감사절을 보냈을 것이다. 휴일을 가족과 떨어져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길바닥에 그냥 앉아 있으란다.

 

그린필드의 Farmland Foods inc에서 받은 세 번의 화물이 모두 문제를 일으켰다. 악몽(惡夢)이다. 다음 번에 같은 곳에서 화물이 들어온다면 거부하겠다.

 

야간 디스패처에게 얘기하니 내일 밤 배달할 것이란다. 그거야 가 봐야 알지. Thanksgiving은 국가적인 명절이라 모두가 쉬니 일이 없다고 치자.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외딴 곳이라 주변에 볼 것도 없다. 바로 옆엔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이다.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며 보낼 밖에. 다행히도 먹을 것은 충분하다. 트럭커에겐 트럭이 집이다. 집에 있으니 뭐가 문제인가. 내게 여가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

 

 

 

112118 추수감사절 전야.jpg

 

 

회복중

       

      

추수감사절, 홀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정확하게는 회복시간을 가졌다.

 

왼쪽 목과 어깨 등짝의 통증이 심해졌다. 간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구글에 승모근(僧帽筋) 통증에 대해 검색했다. 유투브에 강의들이 있었다. 원인은 두 가지 상반된 의견으로 나뉘었다. 운동 트레이너들은 근육의 뭉침이 원인이고 스트레칭을 해결법으로 제시했다. 반면 100년 허리, 100년 목의 저자인 정선근 교수는 목디스크가 원인이고 자세교정과 바른 운동을 해결책으로 들었다. 무리한 스트레칭은 증상을 악화시킨다고도 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지난 번 택시 사고 때 MRI를 찍은 결과 약간의 목디스크 증상은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통증이 목디스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양측의 주장이 상충하지 않는 방법으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자세교정에 주력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달라진 것이라면 랩탑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무릅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혹시 이게 원인일까?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때는 화면은 높은 곳에 올려 놓고 타자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이용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거북목의 원인이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볼 때는 가능하면 화면을 높이 들어 고개를 덜 숙이려 노력했다. 랩탑은 화면을 분리할 수 없으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글을 쓰는 도중 자주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봤다. 마치 닭이 물을 마시고 하늘을 보듯이. 그런 노력의 덕분인지 저녁 즈음에는 통증이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줄었다. 오늘 하루 쉬어서 다행이다.

 

메모 습관의 힘을 읽었다. 저자는 메모 습관을 가진 지 3년 만에 책을 쓰고 블로그 방문자 100만명을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다고 했다. 메모의 중요성은 평소 절감하던 바다. 저자가 제시한 메모 리딩이라는 방법은 내게 도움이 될 듯 하다. 책에서 중요한 문장을 노트에 적어 자신의 생각을 가미하고 그 생각들을 모아 글로 쓰는 방식이다. 나처럼 책에 줄긋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방식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이 많기 때문에 책에 낙서를 할 수도 없다.

 

운전을 하다보면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간단한 단어면 메모를 하고 긴 생각이면 스마트폰에 녹음을 한다. 하지만 대게는 그냥 지나친다. 나중에 생각하려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스쳐가는 생각들을 사금 캐듯 노트에 메모하면 금 알갱이가 모이지 않을까.

 

시민권 인터뷰 공부도 조금 했다. 미국의 건국 이념은 합리적이고 훌륭하다. 지금의 미국이 건국 정신에 충실한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많은 문제에도 국가 시스템이 굳건한 까닭은 헌법이라는 토대 덕분일 것이다.

 

 

 

땡스기빙데이만 같아라

 

 

새벽 030분 경 9번 도어를 배정 받았다. 운이 좋다. 가장 주차하기 쉬운 위치다. 출입문에서 정면으로 보인다. 밖으로 나갔다가 직선 후진으로 닥에 댔다. 다른 도어였다면 좁은 공간에서 애 먹었을 것이다. 115분에 전화가 왔다. 작업이 끝났으니 서류 받으러 오라는 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인스펙션을 해야 한단다. 화물의 온도가 너무 낮다고 했다. 아침에 사무실이 문을 열때까지 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확률은 반반이라며. 화물 내리고 어디로 갈까 고민했는데 주차 걱정을 덜었다. 안심하고 자자. 아침 6시 전에 전화가 왔다. 화물을 받기로 했단다. 서류를 받아 나왔다. 블루비콘에 전화하니 문을 열었다. 새벽에 전화했을 때는 안 받았다.

 

가까운 블루비콘으로 향하다 휴게소에 멈췄다. 일단 다음 화물을 받고 나서 움직이기로 했다. 같은 방향에 있는 블루비콘에서 세차하는 것이 좋다. 휴게소는 한산했다. 많은 트럭 드라이버들이 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장거리다. 화물을 받으러 가는데 500마일, 배달하는데 900마일 가량 거리다. 사흘치 일감이다.

 

이동 경로상의 첫번째 블루비콘에 들렀다. 기다리는 트럭이 15~16대 정도다. 두세시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개인 트럭 세차장이 문을 안 열어 모두 블루비콘으로 몰린 탓이다. 기다리며 시민권 인터뷰 공부를 했다. 2시간 40분 기다린 후에 내 차례가 왔다. 트레일러 내부 세척, 외부 세차, 트랙터 세차까지 풀 세트로 했다. 가격은 100달러가 넘는다. 딱히 얘기를 들은 바는 없지만 컴퍼니 드라이버는 외부 세차장에서 한 달에 두 번 트랙터 세차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 회사 터미널에서야 횟수 상관없이 할 수 있다.

 

바로 옆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샤워를 했다. 발송처까지 거리가 400마일 남았으니 7~8시간 거리다. 남은 시간도 비슷했다. 오늘 중으로 화물을 받아야 배달 일정이 순조롭다. 달렸다. 중간에 약한 비가 내렸다. 세차를 괜히 했나? 트레일러는 너무 더러워서 해야만 했다.

 

갓 로드킬 당한 동물을 오랜 만에 봤다. 국도에 라쿤이 한 마리 죽어 있었다. 지난 번 눈 온 이후로 로드킬 당한 동물을 거의 못 봤다.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며 야생 동물들이 겨울잠에 들었는지. 오늘은 날씨가 포근해서 인지 작은 동물의 사체 몇 구를 봤다.

 

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올렸더니 여러 도움말이 달렸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다들 건강에 관심이 많다. 통증은 거의 사라지고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다. 평소 바른 자세 유지하며 잘 관리해야지.

 

오늘 지난 주 급여 내역을 확인하니 세금 제하고 약 600달러 가량이다. 지난 주 절반 수준이다. 집에 다녀왔고, 눈 내린다고 하루 쉰 결과다. 어떻게 TNT 수련 과정일 때와 수입이 같나? 다음 주도 비슷할 것 같다. 추수감사절 전후로 거리가 짧은 한 건과 지금 배달하는 건 두 건을 합쳐봐야 1,700마일 정도다. 세금 제하고 700~800달러 사이 정도 들어오지 않을까. 최소 2천마일은 넘겨야 하는데.

 

배달처에는 자정 전에 도착했다. 중부 시간으로 바뀐 덕이다. 이곳은 주소만 보면 전에 온 곳 같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확실하지 않다. 구조가 비슷한 곳이 많다. 빈 트레일러는 공장 밖으로 나가 다른 곳에 내려놓아야 했다. 찾아 가는 길 설명이 조금 복잡해 구글맵 위성 사진을 경비에게 보여주고 나서야 확실한 위치를 알았다. 밥테일로 다시 돌아와 사무실에서 서류 받고 끌고갈 트레일러를 연결했다. 14시간은 이미 지났다. 10시간 휴식을 여기서 취해도 된다. 공간 여유가 있어 오버나잇 파킹이 가능하다. 자정이 넘었지만 가까운 트럭스탑이나 휴게소로 가도 된다. 추수감사절 연휴로 트럭이 별로 운행 안 하기 때문에 자리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타로 카드를 뽑아 봤다. 뜻은 분명했다. 눈치 보며 여기 있어도 되지만 가는 쪽이 훨씬 낫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로 약 25마일 떨어진 러브스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빈 공간 천지다. 어제 보름달이 떴던데 Thanksgiving Day는 미국판 한가위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매일 트럭스탑이 이랬으면 좋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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